새벽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고릴라에게서 배웠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천둥, 번개가 쳤고 오래간만에 집중이 잘 되었다. 나는 그 어떤 때보다 가벼운 마음이 되어서 사이판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쓰기는 책읽기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락이다.
3월 이후 중복 코로나에 걸렸다. 7월 29일의 일이었고 4년 동안 모신 뮤즈의 단짝, 제우스의 코로나 발병이 원인이었다. 센터에 보고를 하고 요즘들어 통 시장을 안 보시는 뮤즈의 냉장고가 텅 빈게 떠올랐다. 격리기간 동안 아픈 제우스와 동선을 달리 살아야 할 뮤즈에게는 먹을 것이 없다. 차라리 뮤즈도 이번에 함께 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양손 마비인 뮤즈는 냉장고 문도 혼자 열 수 없다. 냉장고 물조차 마실 수 없다. 토마토 같은 대체 먹거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센터에 문의했더니 아주 조심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어르신과 자식들 사이가 어떨지 모르겠어요.
아, 하고 나도 납득이 되었다. 지방에 사는 자식들은 저마다 살기 바쁘고 코로나이기도 해서 4년 동안 명절에 올라오는 게 다였다.
나는 제우스에게 전화해서 건강 상태를 재확인 후 지나가는 말로 여쭈었다. 제가 자제분들께 전화를 드려도 되겠지요. 제우스로부터 예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손자. 나는 취업준비로 올라온 뮤즈의 손자 점심을 근 1년간 차렸다. 물론 돌봄 서비스 내용에는 없지만 뮤즈도 손이 건강했으면 손자의 점심을 챙겨주었을 것 같고, 그렇게 하는 것이 뮤즈의 정서적 지지에 도움을 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손자의 점심 설거지는 거절을 할 수도 있고, 점심식사를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점심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손자에게 보낸 문자로 용기를 얻고 마침내 뮤즈의 삼남매에게 같은 문자를 보내 먹거리를 보낼 수 있도록 긴급하게 대처했다.
다행히 정명이는 음성으로 나와 엄마댁에서 머물게 했고 나는 콧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현관문을 굳게 닫고 있어야만 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중장년지원센터'에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프로그램 중 요양보호사의 마음에 대해서 사례 중심으로 소개해달라는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돌봄의 양극화가 아닌 돌봄의 표준화. 그리고 돌봄의 다양성과 돌봄의 유연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10월에는 대전행 ktx를 탈 예정이다. 그때까지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