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닉네임은 발탈이다. 발에 탈을 쓰고 노는 민속 연희인데 맥이 끊겨버릴지도 모른다고 해서 기억해두기 위해 이름을 따왔다. 네트워크 상에서 십여 년 전부터 교류해온 스텔라님은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다양한 미술재료로 어머니와 미술놀이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돌봄이 궁금해서 이야기를 청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발탈님, 짧게 이러저러했다 쓰려다가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글 몇 개 보내드려요. 그때 그때 올려둔 글들이라 오히려 더 나을것 같아서요. 도움이 될까요? 요즘은 별거 아니라 넘겨도 될 일들에 제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고는 해요. 누군가 돌봄을 시작하게 된다는 건 자신의 일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난 가을 우리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망원동에서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머니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망원시장 야채가게에서 잔뜩 장을 보면서 천 원, 이천 원 하는 브로콜리, 피망, 양배추, 버섯을 사들고 좋아했다. 남편에게 허락을 맞고 외출한 스텔라님을 정명이가 있는 집으로 초대했다. 양손에 가득 검정비닐 봉지를 들고 언덕을 올랐다. 아이와 개가 있는 저녁은 항상 웃음이 있게 마련이다. 스텔라님은 웃었고, 아이도 집에 손님이 오시는게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나는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엄마 덕분에 자주 이용해서 주소만 알면 선결재로 손님을 안심하고 모셔다드릴 수 있는 기능이 나는 좋다. 오래간만의 외출일텐데 결국 한가득 장을 본 짐을 들고 전철을 갈아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스텔라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잘 돌봐드려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불쑥불쑥 올라오는 스트레스가 공존하면서 가끔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장수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하고요.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건 코로나로 오롯이 돌봄의 몫이 보호자 한사람과 밀착되었을 때 생각해 본 거예요. 한동안 중단했던 미술놀이를 이제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해요. 글쓰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바쁜시간에라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고운 자태와 멋진 스타일을 가진 스텔라님이
어머니를 건강하게 돌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노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것이 나의 일인냥 슬펐다.
어머니의 척추압박골절 에피소드에서는 장거리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소변 문제라는 걸 참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안타까운 듯 그날의 일을 이렇게 전했다.
척추를 다치신 건 입을 꼭 다물고 소변을 참으시다 산길에서 급히 소변을 보시다가 다리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는 바람에 그랬답니다. 얼마나 속상하던지요. 왜 말을 안 하냐고 소리소리 질렀지요.
엄마와 딸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엄마를 모시고 살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짐을 챙기러 갔다가 일어난 일이니 걷던 엄마를 누워계신 엄마인 채 동거를 시작했으니 딸로서는 예상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다시 걷게 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노인의 다리 힘은 어디까지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노화와 함께 진행되는 골다공증은 예상보다 무섭다.
에바 알머슨 따라 그리기를 마친 어머니에게 스텔라님은 묻는다.
“어때요?”
“예뻐.”
88세인 엄마랑 함께하는 미술놀이에서 스텔라님은 잠시 동안이라도 인지증에 걸린 엄마와 예전과 같은 교감을 가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함께 느끼는 순간. 손의 인지능력과 협응능력을 위한 미술놀이를 하는 동안 스텔라님은 돌봄의 다양한 모색을 엄마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엄마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나는 도움을 받는다. 신문을 찢어 붙이는 꼴라쥬 작업을 통해 자작나무 숲이 완성될 때 엄마와의 교감을 기대할 수 있겠다. 잠시라도 집중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