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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May 26. 2023

그것으로 되었다 라고 쓰자


에드워드 호퍼 그림 앞에서 배우 유지태의 목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손습작들.

<두 자화상과 손을 그린 두 개의 습작>을 보는데 사람의 손을 관찰하는 것은 사람의 눈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한 디테일을 요구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계단>이라는 작품은 1949년에 그려졌다. 호퍼가 배를 타고 놀던 허드슨강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다. 유지태의 안내로 그림을 따라가면서 나는 핸드폰에 있는 마이크 기능으로 추가할 메모를 등록한다.


이렇게 그림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나는 어느 사이 허드슨강을 따라 떠다니는 작은 배 안에 있을 것이다. 몰입이 필요했고, 기분전환이 필요했고, 좀 못나보였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그냥 안고 갈 수 있도록 담백해지고 싶었다.


<푸른 저녁> 앞에서 나는 중얼거린다. ‘압도적이다. 압도적이야.’ 그리고 유지태의 설명에 귀기울인다. 혼자 온 그림감상이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푸른 저녁은 3번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4년 후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그린 그림이다. 기억과 상상 속의 파리. 1914년. 나도 모르게 한국사에서 1914년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풍의 종이등과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 푸른 배경의 설명을 들으며 내 감각은 온통 피에로에게 가 닿는다. ‘피에로는 당시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작가의 심리를 투영한 대상으로 추측되며. 호퍼는 이때부터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발전시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푸른 저녁> 앞에서 자석에 이끌리듯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 떨어져 그림을 보면서 나는, 내 안의 피에로는, 울고 있던 피에로는 거울을 보고 있잖아 하고 슬퍼졌다. 슬퍼지면서 그런 감정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위로해주는 그림 앞에서 회복을 꿈꾸는 것이었다.


흰 벽에 써 있는 다음과 같은 글과 만났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삽화가로서의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호퍼는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드로잉처럼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 에칭을 1915년 시도한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들과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길의 간극을 어떻게든 메우려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어디가 아파서, 시작도 하지 못한다면 <푸른 저녁>의 피에로는 너무 슬플 것이다.


<망토를 걸치고 지팡이를 든 걸어가는 남자> 1917-20년경 삽화는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가로로 그은 굵은 선 하나가 대담하다. 선 하나로 지면을 나타내고 펄럭이는 코트로 그림에 리듬감을 준다.


<퀸스버러 다리> 이스트 59번가에 거주하는 동안 인근에 위치한 다리를 그린 작품. 도시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등장한 육중한 다리와 그 아래의 목가적인 풍경이 병치된 기이한 장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황혼의 셰익스피어를 위한 습작> 어머니의 죽음 이후  뉴욕에 돌아온 호퍼는 셰익스피어의 동상을 소재로 그렸는데 이는 죽음을 황혼에 빗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이윽고 소네트73의 일부분이 소개된다.


<황혼의 집> 도시의 사적인 영역을 엿볼 수 있게 하며  그 안에 내포된 긴장감과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한다. 이 작품을 완성할 무렵 호퍼는 화가로서 인정받지만 대공황 이후의 경기침체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다. 맞다 <황혼의 집>에서처럼 혼자만의 저녁이 찾아들고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와도 하루종일 말을 섞지 않는 도시에서의 삶이 기록된다. 황혼의 집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굳이 호퍼의 그림에 열광하는 건 무엇일까. 내밀한 자기 언어를 갖고자하는 몸부림인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일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까.


<밤의 창문> 1928 앞에서 내 생각은 더 증폭된다. 도시의 풍경이 변모함에 따라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며 다른 이의 사생활에 무심코 노출되는 근대도시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타인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좁혀졌는데도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미궁에 빠진다는 이 감각은 무엇일까.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로이드 구드리치는 여행에 대한 호퍼의 몰두는 꽤 의식적이었다. 호퍼는 운전을 할 때 그림 주제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고운 모래 둔덕, 낮은 구릉 사이 띄엄띄엄 자리하는 집, 농가의 소박한 헛간, 따스한 햇볕을 즐길 수 있는  넓고 푸른 자연이 펼쳐지는 이 지역은 주민이 500명 남짓한 작은 마을로, 번잡한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완벽하게 고요한 장소였다. <케이프코드>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시였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나이든 여인 고요한 인상. 시간에 대한 고찰.

호퍼는 큐레이터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소개했다고 한다.


감상을 마치고 나는 나로 돌아왔다. 호퍼의 그림을 보고 온 날은 컬러 꿈을 꿀 것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화면 위로 내레이터의 설명이 활자화되어 나오는데 그것은 내 무의식을 자극한다. 호퍼의 그림은 텅비어 있고 창문은 늘 열려있어 세상과 소통하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소통하려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인상도 동시에 갖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와 대화를 했다. 끈 떨어진 연이 식탁 위에, 내 머리 위로 흔들리고 있었다. 의외로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것을... 미안한 얼굴로 해명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과학 시험 잘 보고 싶어서 문제를 풀었는데 또 다 틀린 거예요.”

“고모가 재시험 보자고 해서 속상한 게 아니라 자꾸자꾸 틀려서 화낸 거라 이 말이지?”

“예”

“그럼 이렇게 말해야지. 고모, 시험 잘 보고 싶은데 자꾸 틀려서 너무 속상해요. 라고. 고모도 어렸을 때 공부 못했다고 말했지? 그런데 자꾸자꾸 하다보면 어른이 되어서는 잘 하게 되는거야. 고모는 네 엄마도 공부를 가르쳤고, 삼촌도 공부를 가르쳤으니까 정명이도 잘 가르쳐주고 싶은거지.”

다음날 아침 정명이는 학교에 축구하고 등교하러 8시 20분에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가기 전에 축구 유니폼과 긴양말을 신으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제 머릿속에 다 있어요. 강낭콩은 둥글고 길쭉하고 봉숭아씨는 둥굴고 어두운 갈색, 호두는 동그랗고 주름이 있다’


아이는 현관 모기장 문을 닫으며 ‘다녀오겠습니다’한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수업에 늦게 들어 온 아이를 제 시간’에 들어오도록 지도하라고 문자를 받은걸 아이에게 전달했던가. 8시 50분 아파트 16층에서 정.명.아 하고 부르자 정명이가 운동장에서 나에게 심판처럼 손을 한 번 들어보이더니 가방을 챙겨 교실쪽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라서 이 모든 일상을 기억할까. 기억 못하겠지? 아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일상이 꾸려온 애정과 배려와 수고를 통해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라 또 다른 타인에게 바른 손, 바른 마음을 내밀겠지. 그것으로 되었다.라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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