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정인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정인에게는 돈벌러 객지로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전부였습니다. 마을 학교에 보내기에 너무나 가난했던 정인이 어머니는 정인이에게 장이 서면 물건을 파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인이는 우선 덧셈, 뺄셈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라 아무리 가르쳐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정인이 어머니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한복집에서 바느질을 하며 먹고 잘 수 있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정인이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말끔하게 바느질을 할 수가 없어 쫓겨났습니다. 정인이를 가엾게 여긴 빵집 주인이 정인이에게 밀가루 반죽하는 일을 부탁했습니다. 정인이는 반죽기계가 없어 아무도 일하려고 하지 않는 빵집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이 어머니는 비오는 날 발을 헛디뎌 허리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정인이는 낮에는 빵집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엄마를 돌보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의 식사 준비며 빨래, 청소를 다 하고 잠이 들면 그 다음 날 아침이 오고, 또 그 다음날 아침이 왔습니다. 그렇게 또 10년이 흐르는 동안 빵집 사장님은 정인이에게 한글을 가르쳐 읽고 쓰게 하였습니다.
정인이는 책읽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빵집주인의 막내 아들 동화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걸리버의 여행>도 읽고, <톰소여의 모험>도 읽고, <소공자><소공녀>도 읽고 <엄마 찾아 삼만리>도 읽고, <집없는 소년>도 읽으며 엄마를 돌봤습니다.
어느 날 정인이는 자신의 나이를 헤아리고는 이제 빵집을 그만두고 세상 구경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생활비며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 문방구에 가서 두꺼운 노트와 볼펜을 사와 그날부터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마음껏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인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정인이가 아는 세상은 마을 안의 이야기뿐이기에 더는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정인이는 다시 노트를 뒤집어서 펼치고 밤이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정인이가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다 써내자 그때부터 정인이의 상상력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에 덧붙이기를 하다 차츰 이야기를 지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정인이의 노트는 아직 아무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빵집 사장님에게는 신문사에 다니는 친척이 있는데 취재차 마을 근처에 올 때면 빵집 사장님 댁에 들러서 자고 갔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문기자 양반의 눈에 띈 정인이의 노트가 인정받고, 무학의 여성 노동자가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쓴다는 가십성 기사가 아주 작게 실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빵집에 들른 여행객들의 입소문으로 정인이는 그 마을의 인기인이 되었습니다.
빵집 사장님은 조금 별난 사람인데 정인이가 처음 빵 반죽을 한 것을 어째서인지 그대로 굳혀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빵집 사장님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간직한 반죽과 함께 진열장에 나란히 진열해놓았습니다. 그 즈음 빵집 사장님은 정인이의 손으로 빵 반죽한 것을 다시 한번 굳혔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빵 반죽과 비교하였습니다.
정인이의 고된 삶은 손이 쉴 틈 없이 일을 해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인이의 손금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정인이의 손금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멋지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인이는 그후로도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손금 이야기를 되새기며 아주아주 훌륭하게 역경을 이겨내고는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저의 여름 선물입니다. 정인이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