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호. 어린시절 건국대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구의동, 자양동은 제 무대였어요. 초등학교 6년 내내 걸어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다녔지요. 건국대학교 안에는 외국인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밖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는 했어요. 학교 준비물을 안 가져가면 매를 맞던 시절이라 분단별 책상 한가운데 알록달록한 색연필이랑 가위, 자 등을 공유하는 외국인 학교가 무척 부러웠어요. 엄마 친구 중에는 하숙을 치는 아줌마가 계셨는데 건국대 4년 장학생인 언니를 엄마가 방학 때 저희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어요. 말 그대로 비밀 과외. 언니는 공부를 가르쳐주는 대신 엄마의 주문에 충실했어요. 그냥 곁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라는 것. 그리하여 저는 대학생과 같이 새벽 도서관에 갔었죠. 캄캄한 밤이 무슨 새벽인가 싶게 그녀는 일찍 별을 보고 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꼬마인 제가 동행해주어서 새벽 길이 무섭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4년 장학금을 타는 사람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공부만 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가는 긴 겨울방학이었지 싶어요. 엄마는 친구의 하숙집에 가서 대학생들의 책을 공수해 오셨는데 그 책이 <어린왕자>였죠. 아주 색다른 책이었어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는 초등학생에게는 말이지요. 건국대학교 안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대학 축제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어요. 축제 때만 작은 배를 띄우던 곳. 멀리서 보면 몹시 시적인 풍경이었을 그곳에서 전 자라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성장기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던 장소를 무대로 쓴 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