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이미지라고 할까요. 깊은 산속 연못 이미지라고 할까요. 저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부터 이 우물 이미지가 따라다닙니다.
스카웃 선서식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뒷뜰 야영과 함께 하는데요. 이것이 또 마을 잔치였어요.
학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던 시절. 저는 스카웃 선서를 하고 촛불을 밝히고 교실 한가운데 거울을 놓고 가장자리를 꽃으로 장식한 우물에 촛불을 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카우트 서약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습니다.
스카우트 규율을 잘 지키겠습니다.
그리고는 운동장에 나갑니다.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어요. 춤도 노래도 연극도 있었지요. 그중에서 캠프 파이어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때까지 10살의 소녀는 그렇게 큰 마법과 같은 불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거든요. 경외심이 들었지요. 그리고 방금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촛불을 든 저는 언어를 통해서 거울이 우물로 변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 거예요.
씨네페미니즘학교 강연 전에 <딸에 대하여>를 만든 이미랑 감독과 밥도 먹고 차도 마셨을 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가정생활이 힘든 친구들 보면 모가 나기도 한데 어떻게 긍정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감독은 질문했어요. 그때 저는 아주 오래전 촛불을 들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미 거울 속에 있던 자신과 열 살 때 사랑에 빠졌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