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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n 01. 2019

로버트 레드포드식 사랑

추억&개츠비

로버트 레드포드식 사랑이란 1970년대의 향수를 이야기하려는 생각에서 붙였습니다.
발탈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 이모와 삼촌 다섯은 빛나는 청춘 시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었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던 세대였습니다.
할머니 주변에 모여서 저녁 식사를 먹으며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밤늦게 들어와 새로 개봉한 영화이야기를 꽃피우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과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요.
그들에게도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마음속으로 간직해야 할 사랑이 지나가기도 했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 세대와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폴뉴먼과 함께 죽는 순간까지 농담을 나누며 탄환 속으로 질주하는 라스트 씬으로 유명한 『내일을 향해 쏴라』가 그렇고 조작된 경마 경기로 최대의 사기극을 벌이는 『스팅』이 그렇습니다. 조금은 어눌한 폴뉴먼과 레드포드가 담합을 하면 싱거운 죽음도 그렇게 멋질 수가 없으며 사기가 극에 달하면 그들의 범죄는 예술로 보일 정도입니다.

돈만 몇 푼 있으면 우리들은 이렇게 시대와 나라를 마음대로 선택해서 80분이나 90분, 때로는 두 시간씩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찾아가는 권리가 주어졌던 것이다. 우리들이 생활로서 더불어 살아야 했던 현실이 극장 밖에서 따로 버티고 있기는 해도 우리들은 극장 안에서는 얼마든지 행복할 권리가 있었다. 
                                                      -안정효의『헐리우드키드의 생애』 

발탈의 이모와 삼촌들은 헐리우드 키드였던 것입니다.
1970년대, 로버트 레드포드식 사랑은 어떤 걸까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 앞에 왜 '위대한'이 붙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게츠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건 마지막 청년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도 무모해 보이지 않았던 시대, 아니 결코 우리들은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츠비는 위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식 사랑 두 번째는 『추억』입니다.
73년도 당시 최고의 스타였 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퍼드가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추억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투씨』 등을 연출했던 시드니 폴락 감독의 출세작입니다.
대학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케이티. 그녀는 극도로 스토익한 대학 생활을 보내긴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허벨을 흠모합니다. 허벨은 스포츠며 문학에 뛰어난 신사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되겠지만, 영화 『추억』 안에는 시대 상황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해군 장교가 된 허벨과 라디오 방송을 하는 케이티의 우연한 재회. 
케이티의 적극적인 구애는 자신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정열적으로 사는 여성을 흠모하는 허벨은 미래에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어 보입니다.
스트라이샌드가 불렀던 주제가 'The Way We Were'가 흐르는 가운데 이들의 마지막 재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의 회환과 시대의 아픔이 오버랩되는 가운데 끝이 납니다.
사랑하지만 다른 길을 가는 둘.
미국 사회에 몰아친 매카시 열풍에 휩쓸려 공산주의라는 마녀사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케이티와 허벨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어렸던 발탈은 이모와 삼촌들의 청춘을 그대로 정지된 필름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버트 레드포드식 사랑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청춘의 인화지와 같은 것이지요.

2004/05/0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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