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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n 01. 2019

길 위에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나레이션과 함께 첩첩 산중을 배경으로 강가에 선 스님 모습이 보인다. 

일년에 단 두번만 문이 열리는 곳 백흥암.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 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

굳게 닫힌 문밖에서 카메라는 클로즈업을 한다.

8월에 길 위에서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꿈꾸는 하루님의 초대로. 또 한 번은 희정씨를 초대해서 보는 동안 내 마음에 어떤 것이 깃들었을까. 산속에서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와 물결처럼 너울대고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공명한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젊은 스님이 감독에게 묻는다.

감독님은 출가를 하실 겁니까? 그럼 다음 생에는?

감독은 말한다. 스님이 왜 내게 그 질문을 했는지 조금은 알듯하다고.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아는 것. 오직 자기 자신의 화두에만 정진할 수 있는 길이 젊은 스님에게는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좋고 행복한 길을 마땅히 다른 사람도 가고 싶어하지 않을까?

밤의 도시를 빠져 나오면서 스님들이 부러워한다는 동자승인 선우스님의 첫 만행 길. 선우스님의 만행 길에 동행한 무진스님과 소현 스님이 강물 위에 흔들리는 뱃전에 앉아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부모 이름도 모르고 성인이 되어서야 부모의 첫 제사를 올린 선우 스님의 눈물이 어린 여자아이의 눈물과 다르지 않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들이 하늘로 다시 날아오르는 모습 또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빛의 산란처럼 산중에 나부끼는 낙엽이 아름답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해서 소리없이 눈물이 났다.

영운스님은 말씀하신다. 화두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 될 것 같지만 안 되거든요. 하루에 속고, 30일에 속고. 한 철 수행이 마치 죽 떠 먹은 자리처럼 표가 안 나요. 이번 철에는 내가 밥값은 했나.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만 있었다면 마지막 염라대왕 앞에서 밥값했느냐 물으면 뭐라할 것이며. 밥 한 바루가 피 한 바루라 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밥.값.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잊지 못하신다... 그 밥값은 갚아야 하는 겁니다. 도를 이루지 못하면 밥값은 언젠가 갚아야 합니다. 그 밥값은 내 밥값이기 때문에.

어째서 눈물이 나는 것일까. 나는 밥값이라는 말에 검은 눈물을 흘린다. 시커먼 눈물, 아직도 제 밥값을 남이 갚아주려나 하는 안일함에 놀랐던 것일까. 염치 없이 자꾸자꾸 눈물이 나서 끄윽끄윽 허공에 금을 그어가며 울음 소리를 죽인다. 아, 나는 어쩌면 영영 밥값도 못하고 죽을 수 있겠구나 싶어 두려워졌다.  

촬영을 마치고 큰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스님은 1년 동안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으셨다. 

나레이션과 함께 열렸던 백흥암의 문이 닫힌다.

나는 밥값을 하기 위해 다시 문밖에 내몰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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