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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May 26. 2019

변호인

나는 주인없는 집의 주인이오

엄마는 혼자서 변호인을 보고 오셨다고 한다.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조근 근무를 마치고 서울극장으로 향한다.  


영화는 1978년 부산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송우석, 고졸인 그가 대전지검판사를 그만두고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김상필 변호사를 찾는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기 위해 돈을 꾸기 위해서다.

부산공대 1학년 박진오. 진오의 어머니는 국밥집을 하신다. 송우석은 7년 전 아내의 출산과 가난으로 준비하던 사법고시 책을 헌책방에 팔고 아파트 공사장 노동을 했을 때 진오의 어머니 가게에서 밀린 밥값을 떼먹은 적이 있다. 그날 떼 먹은 밥값으로 그는 헌책방에 팔았던 책을 되찾는다.

부동산 등기 대행으로 윤택해진 송변호사는 가족을 데리고 7년 전 국밥집에서 외식을 한다. 그리고는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떼먹은 밥값을 갚겠다고 하자 밥집 아주머니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자고로 묵은 빚은 얼굴하고 발로 갚는기라." 
그후 송변호사는 매일 국밥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어느 날 송변호사는 고교동창들과 함께 국밥집에 들러 술을 마시다가 언쟁을 한다. tv 뉴스를 보고 있다 데모하는 이들이 비치자 공부하기 싫어서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 데모로 세상이 바뀔 정도로 그렇게 말랑말랑한 게 아니다고 한다. 그 말을 받아 신문사에 다니는 친구는 '아무리 돈 버는 게 바빠도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라' 하고 외친다.
그러는 너는 부산일보 왜 안 짤리는데. 송변호사.
둘은 엉켜 주먹다짐을 하고 가게 안은 엉망이 된다.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빈 가게에 국밥집 아들과 단둘이 있게 된 송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니는 데모 안 하지. 어무이 이리 고생하며 가르치는데 천벌받는데이."
"데모하는 사람이 천벌을 받으면 데모를 하게 만든 사람은 천벌 안 받습니까." 

그런 진우가 야학을 하다가 끌려가버린다.
제2의 광주사태(518민주화운동)를 막기위해 부산으로 투입된 차동영에 의해서다. 경찰이었던 차경감의 아버지는 6.25때 학살당했다. 그런 그에게 강검사는 빨갱이로 몰 학생들 리스트를 넘기며 "뾰족한 건 없네. 우리 차경감이 만들어 줘야지" 한다.
"이 애들 진짜 빨갱이면 대한민국 다 빨갱이입니다. 경찰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게 형사는 범인을 예방하는 자여야 한다 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경찰과 검사의 공모에 의해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된 진우와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친구들은 강제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는다.

가족의 면회조차 거절당하던 진우를 어렵게 면회한 자리에서 송변호사는 진우의 몸 구석구석에서 고문받은 흔적을 발견하고 외친다.
"이 뭐꼬, 이 상처 뭐 꼬." 
"이런 게 어디있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할게요. " 정우와 면회를 마치고 돌아 온 송변호사는 김상필 변호사를 찾아가 말한다.
세무회계 전문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의 갈림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재판에서 송변호사는 불법연행, 고문 등 불법적인 경찰 수사과정을 밝히고 검찰의 진술서도 강제에 의한 것이라 강조했으나 번번이 기각된다. 마침내 고문과 거짓 진술을 받게 한 차경감을 증인석에 세웠으나  '국보법 등은 자백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기가막힌 대답이 돌아온다.
"당신 생각엔 6.25가 다 끝난 거 같지? 우리 휴전이야. 휴전. 전쟁 잠깐 쉬는거라고. 사람들은 전쟁이 다 끝났는줄 알아. 왜 그런 줄 알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거야. 우리가 빨갱이 잡아주니까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집에 가서 생각해봐."
차경감과 비슷한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가.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던 시절에 이 말은 다른 모든 잘못을 덮어주는 투명망토 노릇을 해왔다. 무시무시 하고 일그러져 있으며 폭력적인 명분.
"학생 몇 명이 모여서 책을 읽는 것이 국가보안법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인이 어떻게 압니까. 그들이 불법인지 누가 정합니까?"
"국가가 정합니다." 차경감
국가를 위해서 학생을 고문하고 허위 진술을 쓰게 한 경감에게 송변호사는 외친다.
"국가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송변호사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검사와 경찰이 모의했던 대로 끝이난다.
 

이윽고 1987년 박종철 군의 추모행사 앞에 선 송변호사가 나오고 그가 외치고 있다.
"여러분 박종철 군의 추모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흩어지지 말고 이 자리를 지킵시다."
박종철 군의 추모 집회 참석으로 변호인이 아닌 피고인이 된 그의 재판에 변호인을 자처한 99명의 변호사들 이름이 호명된다.
자막에는 부산지역 변호사 142명 중 99명이 송변호사를 위해 변호를 했다고 뜬다. 


서울극장을 나와 종로 3가에서 1가, 광화문까지 걸었다. 내일은 엄마를 찾아가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리라. 엄마가 기억하는 부림사건에 대해서 듣기로 하자.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한쪽으로는 오늘의 할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에 있는 동생의 간식비를 이체하고 손자(마흔 여섯에 할머니가 되었다)의 기저귀와 분유를 인터넷으로 결제하고 막내 조카의 학원비를 내고...
주인없는 집의 주인으로 산 지 얼마나 되었나.
아빠엄마가 없는 아이들의 보호자로 사는 게 늘 당연한 일이라 여겼던 내가 늙어가고 있다. 힘이 들고 지친다. 힘이 들고 지치는 한계점이 날마다 낮아지고 있다. 그런 내가 회사에서는 가끔 노동운동가 흉내를 낸다. 경쟁사에 지지 않으려고 밥먹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는 선배들에게 따지려 든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왜 쉬지 않는 거죠? 하루종일 서서 다리가 붓고, 물이 차서 병원다니며 그렇게 일 해야 하나? 4시간에 30분 쉬기로 했으면 쉬어야지."
그들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고 매달 내야 할 세금이 있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간절함은 알겠는데 서로 쉬는 것도 경계하며 경쟁을 하는 사회는 바로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국가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주인인데 왜 주인노릇은 하지 않고 종노릇을 하고 있나. 사회 곳곳에 주인노릇 하지 않는 자가 많은 건 아닌가. 주인노릇 하지 않는 자, 책임을 지지 않는 자, 방관하는 자가 많으니까 객이 와서 주인없는 집의 주인노릇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그게 싫으면 좀더 확실하게 주인노릇 해야 한다.  /2014.2.1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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