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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n 13. 2019

기생충

다시 쓴 죄와 벌




기생충에서 라스꼴리니꼬프를 보았다. 

도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인을 하기 위해 돌을 들고 계단을 한발 두발 내려갔던 기우가 바로 라스꼴리니꼬프였다.


7월 초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도스또예프스끼 전집 13. 11쪽)


방이라기보다는 벽장 같은 곳, 5층 건물의 지붕 바로 아래(13권 11쪽)에서 살던 라스꼴리니꼬프와 기우는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섯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새장(13권 58쪽), 낮은 천장과 좁은 방이 영혼과 정신을 얼마나 숨막히게 하는지(14권 805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천진하기까지하다. 미래에 돈을 많이 벌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그렇게 라스꼴리니꼬프를 닮았을까 따져보면 우선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학력을 위조하면서 '아버지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갈거거든요'라고 말할 때는 라스꼴리니꼬프가 나폴레옹을 빙자하여 자신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 줄 몽블랑 원정도, 툴롱도, 이집트도 없고, 그 멋지고 기념비적인 것들 대신에 오로지 어떤 우스꽝스러운 고리 대금업자 노파만이 있다(801쪽)면 자신은 주저할 게 없다고 소냐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있는데 기우에게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냐와 같은 구원의 존재도 없고, 오빠의 출세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나이 차이가 많은 남자의 청혼을 승낙한 여동생도 없고, 그런 딸의 결혼을 말리지도 않는 엄마도 없다. 그러니까 온 가족이 오직 한 사람의 출세만을 위해 헌신하기 보다는 마치 동료처럼 행동하는 가족이 있다.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지하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고 기우는 말한다.

'민혁이는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했을까' 

기우의 여동생은 그런 기우에게 '그 형에게 이런 일이 왜 생겨'라고 일갈한다.


그렇다. 부유한 계급에게는 그런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도 않고 궁지에 빠졌다고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아이스크림 종류처럼 다양하다. 결국 계급은 어떤 사건조차 어느 계단에 서 있는가에 따라 미리 삭제된 채 맑고 투명하고 상쾌하게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기우의 문제의식이라든가 고뇌라든가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전혀 계급적이지 않고 쿨하다. 


19세기의 한 청년은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만약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도스또예프스끼 전집 14권. 1005쪽)' 라고 탄식한다.


그렇다면 내가 기우를 잘못 본 것 같다. 기우는 라스꼴리니꼬프가 아니라 가정교사인 두냐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던 스비도리가일로프였다. '가장 자기를 잘 속이는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즐겁게 사는 겁니다.'(도스또예프스끼 전집 14권 930쪽) 기우는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겠지.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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