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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n 01. 2019

귀향 2



영화 귀향을 보러 가는 길은 1박 2일이 걸렸습니다. 귀향을 보려고 마음 먹자 여러 가지 경로로 한일근대사에 대한 정보가 수집되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귀향을 예매한 분들도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며칠 동안 귀향에 대한 생각을 문득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거나 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여정들과 함께 영화 보러 가러 가는 길의 시간이 짜여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미리 보는 한일사3'을 사들고 서점을 나와서 씨네큐브로 향하는 도중 세월호 유가족 서명운동과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교사 인정을 받지  못하신 숨진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순직 인정에 대한 서류에 싸인도 합니다. 단지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그분들이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이제서라도 받아야겠지요.


마침내 귀향 관람 시작.

소녀들이 전원 마을을 배경으로 놀이를 합니다. 주인공인 정민은 친구들이 찬 괴불 노리개(어린이들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 모양의 노리개로 귀신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도 있다.)가 탐이 나서 내기 공기를 합니다. 정민은 끝내 친구들의 괴불 노리개를 얻게 되지만, 그것을 안 정민의 엄마는 불호령과 함께 회초리로 때리기까지 합니다. 영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엄격한 가정교육이 마치 식민지 침략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영화는 성폭행을 당하고 눈앞에서 아버지가 범죄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을 본 후 정신이 이상해진 은경이 만신에게 맡겨져 씻김굿 하는 걸 돕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은경을 딸로 삼은 만신이 친구 영희의 가게에 가서 옷을 맞춰주러 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되지요. 

영매의 길로 들어선 은경은 영희의 가게에 있던 괴불 노리개를 보고 실신을 하고 맙니다. 깨어난 은경이 영희에게  

이 많은 것들은 다 뭐예요.

그거는, 그거는 괴불 노리개야.

이걸 만지니까 나비도 보이고 군인도 보이고 그래요. 군인. 총도 들고 칼도 찬 군인.

꿈에서 할머니가 만든 괴불 노리개를 본 것 같아요. 합니다.


다나카라는 일본 청년이 있습니다. 선임이 부릅니다. 

어이, 다나카(선임은 달려오는 다나카의 복부를 걷어 찹니다.) 그는 전투에서 죽은 조선인을 보고 두려워 우는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정민의 방에 들어 옵니다.

두려움에 떠는 정민에게 다나까가 말합니다.

잠시 앉아볼래. 10분 동안 쉬고 있어.

안돼요.

이거 말이지. 돈을 건네주며. 사실,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 왔는데 널 보고서 생각이 바뀌었어.

어째서요.

넌 내 여동생을 닮았어.

다들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순간이 무서운거야.

너 이름은?

마사코입니다.

그 이름 말고 진짜 이름.

침묵, 한숨

몰라요...


장면이 바뀌어 물가에서 잠시 시름을 잊고 발을 담그고 있는 그녀들.

평양서 기생이었던 분숙에게 소녀들은 노래를 청합니다.

이때 산자락 구비구비 울려 퍼지던 가시리는 위안부로 끌려간 곳에서 군인이 된 오빠와 만나 미쳐 버린 소녀와 야단치는 엄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녀와 헤어지기 전 괴불 노리개를 건네주며 끌려가는 딸의 손을 잡고 꺼이꺼이 울던 엄마를 그리워하던 소녀들을 나비처럼 고향에 잠시 데려다 준 게 아닐까요. 가시리를 들으며 위안부에서의 아귀소굴에서 생존한 그녀들의 젊음을 떠올려 봅니다. 정민의 머리맡에서 좋은 데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라며 괴불 노리개 때문에 맞은 종아리에 난 회초리 자국을 고쟁이로 가려주시던 어머니의 바램은 간곳 없습니다.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에 가시리라는 곡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는 가시리에서 우리 나라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윽고 정신대 피해신고를 처음 하신 김학순 할머니의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용기를 내어 동사무소에 피해 신고를 간 영희는 우연히 직원들의 대화를 듣습니다.

-정신대 실적 보고해야 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과거를 밝혀

-내가, 내가 그 미친년이다 우짤래! 외치는 영희의 절규가 온 세상을 갈라놓을듯 합니다.


위안소를 달아난 소녀를 잡기 위해 군인들은 혈안이 되어 한밤중에 소녀들을 밖으로 동원시킵니다.

그들 중 한 병사가 소녀들을 향해 소리칩니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단지 황군을 위한 암캐다.

이 부분에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더 똑바로 봐 두겠다. 눈 감지 말자 라고 주문을 겁니다.


영희의 부탁으로 영매가 된 은경이 씻김굿을 합니다. 은경 자신의 몸을 빌어 영희와 함께 달아나다 그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게 된 정민이 찾아옵니다. 그들의 재회를 보고 그들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보고 그들의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보고 씻김굿에서야만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정민을 봅니다.

정민의 씻김굿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혼령들이 하나둘 등장합니다. 그중에는 다나카도 있습니다. 정민과 같이 이유도 모르고 끌려 온 어린 병사 다나카도 저승에 가지 못한 건 마찬가지겠지요.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야지 언니'


영화가 끝난 후 이토록 긴 엔딩 크레딧은 처음입니다. 약 10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세계영화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가장 긴 엔딩 크레딧이 될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작비를 후원한 시민 7만 5270명의 이름이 담겨있습니다. 나눔의 집에서 기거 하시던 할머니들의 그림과 제목이 소개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2015년 2월 22일 강연 100도씨에서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를 소개할 때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 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쓸모가 없어진 소녀들은 그냥 죽였다는 증언이 이 그림 속에서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지요. 


귀향을 보고 난 후 막내조카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귀향 보았어.

-나도 봐야 하는데.

-영화 귀향은 대학생이 되면 볼 영화리스트에 올려놓거라.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을 테니까. 하지만 2015년 2월 22일 방송을 탄 조정래 감독의 강연100도씨 유투부 영상은 시간을 내서 보았으면 좋겠구나. 영화 귀향의 귀가 귀신귀자인 건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원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 한국사 수행평가로 요즘 고미숙 강의 봐요.


2016년 2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김영희님의 글을 보며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제목은 너희는 지우라, 우리는 기억하리 중에서 마지막 단락에 공감을 했으니까요.

<귀향>이 인상적이었던 점 가운데 하나는 일본군에 대한 분노를 선동하지 않으면서 위안소를 위탁운영했던 민간업자의 존재나 위안부에 동정적이었던 일본군의 사례까지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인들이 외면해온 ‘사실’이라고 그토록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그럴수록 국가와 군의 책임은 더 선명하게 떠오름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성숙해진 시민들의 인식이 정부의 합의 몇줄로 바뀔까. 우리는 이미 12·28 합의를 넘어서고 있다. 


영화 '귀향'은 한국의 소리와 굿을 통해 치유를 노래하고 있으며 그 노래가 이토록 아프게 다가오는 통에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세계로 향해 열어 놓았습니다. 이제 더이상 피해의식을 가진 민족이 다 끝난 문제를 자꾸 거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인들이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시사회가 세계 곳곳에 상영되며 일으킬 반향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지켜봐야지요. 일본 정부가 못하는 걸 일본 시민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그들도 한때는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힘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가졌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마치 다나까 병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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