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유난히 뮤즈의 얼굴이 우울해 보였다. 2주 후로 잡힌 신경정신과 예약이 곧 있으면 다가온다. 약이 바뀌어서 약의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집중 관찰이 필요하다. 조현병 약을 드시던 뮤즈가 이젠 환청이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약을 바꾸면서 다시 이런 증상들이 나타날까 봐 우려가 되기도 하고 졸음이 오는 정도가 너무 세면 밤에 화장실을 가시다가 쓰러져서 다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뮤즈의 우울이 약 때문인지, 일상에서 생긴 감정의 변화인지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감정표를 작성하여 표시해두었다. 신경정신과 상담 시 제출하기 위해서..
뮤즈의 감정의 흐름은 이랬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만나 혈액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던 중 뜨거운 햇살을 의식하며 '우리 영감 덥겠다'라고 걱정을 하셨다.
노부부는 양파껍질이며 파뿌리, 계피 등의 약초를 넣고 끓인 차를 물 대신 음용하시는데 냉장고에 넣어두고도 남은 차가 상할까 봐 매일 한 번씩 끓여둔다. 그 일은 대부분 내가 하지만 월요일 병원 방문과 점심준비 등으로 미처 주전자의 물을 끓여드리고 오지 못했다. 가사는 끝이 없어서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화요일에 갔더니 주전자가 타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물을 끓이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까 주전자 손잡이가 녹고 있었어.'
'아, 큰일 날 뻔했네요.'
'응, 큰일 날 뻔했어.'
뮤즈는 주전자를 태운 일로 무척 의기소침해지신 듯했다.
그 일로 할아버지께서는 걱정을 하셨겠지.. 뮤즈는 더운 날 일하고 온 남편을 힘들게 해서 미안했을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주전자 대신 들통에 담긴 차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다. 집안은 한낮의 더위와 들통이 끓는 통에 정신을 놓을 정도로 찐다.
'다음부터는 혼자 있을 때는 불을 사용하는 건 안 좋을 것 같아요. 도시가스에 부탁하면 일정 기간 가스불을 끄지 않으면 타이머가 작동하는 장치가 있던데..'
'응'
그리고 수요일인 오늘 이틀 동안 우울했던 뮤즈가 회복되어 보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래간만에 장을 봐오셨는지 현관에 감자 한 상자가 있고, 음식물 쓰레기에 참외껍질이 보였다. 덥지만 서로 이웃하며 사는 노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는 이유가 되어 아침밥을 드시고 할아버지께서는 하루 종일 혼자 있을 아내를 위해 참외를 까서 접시에 두고 나가셨겠지. 뮤즈는 그 참외를 드시고 우울했던 감정이 회복되었을 거다. 오늘 감정표에는 보통 표시를 해둔다.
오늘 점심 메뉴는 상추쌈. 고기를 싫어하는 뮤즈의 기호에 따라 고기 대신 냉장고에 있던 가지볶음을 상추에 싸서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