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갑시다

by 이은주

지난밤 손자는 새롭게 개장한? 꼬꼬마 도서관에서 바버라 엠. 주세의 '엄마, 나 사랑해?'를 들고 와서 읽다 잠이 들었다.

엄마, 나 사랑해?
그럼, 아가야.
얼마만큼?까마귀가 보물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개가 제 꼬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야간 등을 끄는데 손자가 말한다.
아까는 말 안 들어서 미안해요.
나도 아까 소리 질러서 미안해. 네가 잘못했다기보다 허리가 너무 아팠어..
요즘 우리는 매일 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사과를 하고 잠이 든다. 책꽂이가 무너진 후 밤샘 작업을 한 것이 피로했는지 여름 감기에 걸렸다. 손자도 여름 감기에 걸려 어린이집을 이틀 쉬었다. 첫날은 어떻게 어떻게 아이를 맡겼는데 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돌봄 일을 하고 있는 양손 마비인 뮤즈 집에 손자와 동행했다(원칙에 어긋난다. 센터가 알면 야단이다). 우리가 현관에 서서 아침인사를 하자 뮤즈가 반기셨다. 전날 상황을 미리 말씀드리긴 했지만, 일터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미안했다.
죄송해요. 하고 이해를 구하자.
괜찮아. 귀엽고 좋지 뭐.
평상시 말씀이 별로 없으신 뮤즈가 자애롭게 미소 지으셨다.

집에서 가져 간 자두와 뻥튀기를 간식으로 내놓자 둥근 상에 뮤즈와 손자가 아주 익숙한 풍경으로 둘러앉는다. 점심을 챙겨드리고 우리는 점심으로 싸간 김밥을 뮤즈의 별식으로 나누어 드린다. 집에 없는 티브이 앞에 바짝 다가앉아 한낮의 만화영화에 열심인 손주에게 뮤즈가 점잖게 타이르신다.
뒤로 조금 더 물러나야지.
내가 세탁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근무력증을 앓는 뮤즈의 몸을 씻기며 바삐 움직이는 동안 손자는 간간이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앓는 소리를 내며 채널을 돌려가며 만화를 본다. 만화가 지루해질 무렵 손자는 준비해 온 그림책을 펼쳐 들고 '이상한 엄마'를 소리 내어 읽는다. 마침내 집으로 갈 시간.
나는 두 사람을 돌보느라 기진맥진이 되었지만,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한다.
아이와 하루 종일을 보낸다는 것. 수시로 요구사항이 바뀌고 수가 틀리면 떼를 쓰는 개구쟁이, 그것도 몸이 아파서 조금은 징징대도 살살 달래 가며 돌봐야 했던 하루를 살자 내 몸은 연기처럼 꺼져갔다. 저녁 메뉴로 감자튀김과 치킨너갯을 요구하는 아이를 위해 부엌을 분주하게 다니는 동안 간식을 탐하는 뽀삐가 발에 차이고 팽이 놀이를 하던 아이까지 부엌으로 진출하자 점점 짜증이 났다. 얼마 전에 받았던 아동학대 교육에서 소리 지르는 것도 학대에 속한다고 배웠기에 참고 참았지만 제어장치가 사라졌다.
다들 저리 가 있어!!
뽀삐와 손자가 방으로 달려갔으면 좋았을 텐데.. 감자튀김으로 기름을 쓰고 있는 부엌에서 마침내 어깨 두드리는 고무 안마기를 들어 손자의 등짝을 때렸는데 돌아오는 답은,
아이고 시원하다~
느물 느물해진 아이에게 고무 안마기를 건네는 나.
그래? 그럼 나도 두드려줘.
있는 힘껏 때리는 손자.
아얏. 이건 너무 아프잖아.
복수의 미소를 지으며 손자가 유유히 팽이놀이를 하러 들어가 버린다.
내 삶이 점점 뒤죽박죽, 코믹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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