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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Sep 26. 2021

라디오 스타는 청년 폭도의 꿈을 꾸는가?

노브레인, <자유로 센티멘탈>(2003)


언젠가 전효성이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SNS에 최근 사진을 올리면 다들 체중을 불려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달라고 하는데 정말 답답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는 어려서 살이 있어도 보기 좋았던 거고,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않다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자신이라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 방송을 보며 나는 노브레인 이성우를 생각했다. 예전에 그도 비슷한 말을 지겹도록 들었겠지.


2002년 차승우가 탈퇴한 뒤, '힘차게 맹진하며 골로 가는 청춘'이던 노브레인은 <Little Baby>를 속삭이고, 귀여운 율동과 함께 <넌 내게 반했어>를 외쳤다. 영화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전 국민이 아는-크라잉 너트와 헷갈리긴 해도- 밴드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노브레인이 정말 NO BRAIN이 됐다고 뒷짐을 지고 혀를 끌끌 찼다. 분명 성낼 노(怒) 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는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2000) 앨범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2007년 대선, 이명박 후보의 로고송으로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흐르던 순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끌끌 차던 혀를 멈추고 입을 딱 벌렸을 것이다. 나도 분당의 한 골목에 서서 떡볶이를 먹다가 그 로고송을 처음 듣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불대가리 이성우가 러블리즈 덕후 아저씨가 된 지금, 차승우 탈퇴 후 노브레인이 낸 첫 앨범인 <안녕, Mary Poppins>(2003)을 들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 누군가는 그에게 변절했다고 비난했지만, 나는 이 앨범이 그저 직전에 낸 앨범 <Viva NoBrain>(2001)의 다음 이야기로 들린다.


2001년의 이성우는 <투혼>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환하게 빛나지만 희망 없는

일그러진 저 하늘을 보면서

셀 수 없이 뱉었던 담배연기 속의

많았던 새하얀 한숨들


가슴속에 그려진 고통들을 지워버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마음속의 투혼을

목 터질 듯 불러보리라

아아 나 이맘 영원하리라



2003년의 이성우는 <자유로 센티멘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꿈은 꿈이라고 말했었던 친구의 무겁던 한마디도

시린 가슴 안에 담을 수 없어

담배연기 속에 날려 보냈네


아아 그대와 우리의 인생은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꿈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결국에 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밤의 열기가 차갑게 변하는 새벽이 오면, 바다 사나이도 청년 폭도도 자유로를 달리며 시린 가슴속에 담을 수 없는 가사들을 담배 연기에 날려 보내는 것이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성우와 전효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꿈을 꾼다. 누군가는 로큰롤 야만인이 되는 것을, 누군가는 영원한 청춘을, 누군가는 시간이 이대로 멈추는 꿈을 꾼다. 그러나 자유로는 생각보다 짧고, 꿈은 금세 깨어진다. 임진각을 넘어갈 수는 없으니 방향을 바꿔서 다시 달린다. 또 꿈을 꾼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모든 것이 액셀을 밟으며 차창 너머로 보는 풍경 같은 것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라디오 스타가 된 노브레인은 아직도 청년 폭도의 꿈을 꾸는가?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추악한 돼지들의 몸부림을 보리라'던 1998년의 노 브레인은 라디오 스타의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은 억지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센티멘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여서 아아 나 이맘 영원하리라, 하며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른다.


MBC <라디오 스타>에서 전효성의 고민을 들은 김구라는 대수롭지 않게 SNS에 예전 사진만 올리라고 말했다. 성의 없고 명쾌한 답변이다.


2001년 이후로 노브레인은 쉼 없이 음악하고 있다. 차승우는 두 개의 밴드와 한 개의 영화를 거치며-신인 남우상도 받았다-, 역시 쉼 없이 음악 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차승우와 노브레인이 함께 <바다 사나이>와 <청춘 98>을 공연했다. 이성우는 차승우가 이혼한 전 부인 같다고 얘기했고, 차승우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며 받아쳤다.


완벽한 결말이다.



https://youtu.be/B-1EMCPkjsU


https://youtu.be/aLBdl9_ws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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