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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Jul 01. 2024

박병호를 보며 최익성을 생각한다

옮겨 다니는 삶에 대하여

얼마 전 8년 다닌 회사를 떠나, 새 회사로 출근했다. 전 회사는 사회적으로, 업무적으로 시작부터 함께한 곳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출근길이며 사원증이며 영 어색해서, 한 달쯤 뒤에는 이전 회사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 하는 생각과 괜히 옮겼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오래전 맞지도 않는 정장을 입고 첫 출근하던 뻘뻘이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얼마 전 kt 박병호와 삼성 오재일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오재일도 그렇지만, 박병호의 이적은 또? 소리가 나올 만하다. 히어로즈의 자존심이었던 국민거포, 대기만성의 상징 같던 그는 짧은 메이저리그 생활 후 2022년, 히어로즈에서 kt로 FA 이적했다. 에이징커브가 왔다, 예전의 박병호가 아니다, 소리를 한창 듣던 때라 모두가 kt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적 첫 해 홈런왕을 차지한다. 화려한 부활이었다.



그러나 2023년 포스트시즌의 끔찍한 부진(한국시리즈에서도!)은 2024년까지 이어지고, 그는 팀에 방출 요청을 한다. 기어코 다른 팀으로 옮기자, 사람들은 박병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는 귀신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째 kt에 처음 갈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박병호 정도의 경력과 커리어를 가진 선수라면, 자신이 이 타이밍에 팀을 옮겨서 출전 기회를 더 받으면 성적이 좋아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병호처럼 국가대표 중심 타자를 할 만한 실력도 아니고, 프로야구 역사의 한 획을 긋지도 못했다. 뭔가 좀 되는 것 같은데, 하는 시점에 얼떨결에 옮긴 것이다. 또 몇 년이 지나면 나는 좋은 방식으로든 나쁜 방식으로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힘든 게 아닐까, 언제까지 이렇게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 문득 최익성을 생각했다.



최익성. 프로야구 저니맨의 상징 같은 남자. 그는 1994년 삼성라이온스 연습생 입단을 시작으로, 5개의 팀을 더 거친 후 2005년 SK와이번스에서 은퇴했다. 일곱 팀이나 입단할 정도로 쓸모가 있는 선수였고, 독특한 캐릭터와 파이팅이 있었다. 확실한 전성기도,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결정적 홈런까지)도, 확실한 하락기도, 정치적 이유의 배척도, 실력 부족으로 인한 방출도 있었다. 야구 선수로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하며 부지런히 이곳저곳 옮겨다닌 선수.


박병호를 보며 최익성을 생각한다면 좀 오버일 수도 있겠다. 그가 삼성라이온스에서 계속 활약하면 좋겠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활약이 ‘오픈빨’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박병호가 한번 더 비슷하게 팀을 옮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응원하고 싶다.


오래전 온몸으로 그것을 보여준 최익성을 보며 생각한다. 국가대표 4번 타자도, 연습생 입단 선수도,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야구를 하는 것이다. 트레이드 후, 사랑하는 친정팀의 타자들에게 공을 던질 수 없다며 은퇴해 버린 트윈스의 전설 이상훈처럼 멋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야구를 하려 애쓰는 선수들이 더 좋다. 안타를 칠 수 없다면 데드볼이든 폭투든 어떻게든 1루 한번 나가 보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이 야구이며, 인생이기 때문이다.


한번 더 돌이켜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이미 수많은 팀을 옮겨 다녔다. 오래전 대학에 입학하며 상경한 이후로, 나 역시 어떻게든 한 베이스 더 가보려고 아등바등하며 이곳저곳 부지런히도 뛰어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출루를 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저 도루를 생각하지 않고 투수의 공을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막 투수가 선동열이다? 어쩔 수 없지. 방망이 꽉 잡고 투수가 전날 과음했기를 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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