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순한 맛

온전히 내 것

피자와 들깨채소탕

by 꽃반지


집안에 꼼짝없이 틀어박혀 있던 어제는, 과장을 살짝 더해 봄같이 따뜻하더니 - 대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내놓기 위해 30초 정도 바깥세상과 접촉했다, 흡! - 오늘은 일보일짝, 그러니까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바람이 내 볼때기를 짝! 가격할 정도로 춥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피자집으로 향하는 이 순례길을 그만 포기할까 싶다가도, 내가 이 추위와 맞서며 바깥세상으로 나온 이유가 오로지 피자라는 사실을 복기하며 바람에 맞서 다시 한발 내디뎌본다.


드레스코드는 화이트입니다

꼬마들이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누구랑 놀아야지!'하고 한껏 부푼 기대를 안는 것처럼 - 꼬마들아! 혹시 너희들이 잠자리에 들 때 하는 생각이, 일개 어른인 내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심오하고 복잡한 것이라면 사과한다 - 나도 매일 밤 자기 전, 다음 날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사업구상이나 성공적인 미팅, 계약 체결 같은 거라면 참 좋을 텐데, 밑그림의 대상이 먹는 메뉴라는 게 아직까지 내가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라면 이유랄까. 어쨌거나 어젯밤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채소들깨탕 먹어야지' 하고 다짐한 대로,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잠깐 정리하고 바로 냉장고 문과 함께 하루를 열었다. 토란, 무, 연근, 버섯, 호박, 당근, 대파, 브로콜리... 1인 가구의 냉장고에 이 모든 야채가 구비되어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랍다. 오늘은 채소들깨탕을 먹으라는 신의 계시인 게야! 채소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물로 씻은 뒤 각각의 채소를 정성스레 손질했다. 대부분의 재료가 단단함을 자랑하는 뿌리채소라 칼질이 여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단단한 채소가 입안에서 살캉거릴 정도로 부드럽게 익혀야 하니 끓이는 시간도 제법 걸린다.


여러 채소가 부드럽게 어우러진 채소들깨탕

불 앞에 서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을 열심히 걷어내는데 문득 '나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낭비 같았다. 할 것도 많은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써야 하는데. 국자를 든 채 지금 눈 앞에서 끓어오르는 국물처럼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조급함과, "아니, 아침 해먹을 시간도 없단 말이야?" 하고 나의 조급함을 책망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를 마주했다. 순식간에 마음이 뒤엉켰다. 나야 그러거나 말거나 채소들깨탕은 착실히 익어간다. 갖은 채소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채소들깨탕은 한 숟갈 입에 떠 넣자마자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맛이 좋았다. 좀 더 느긋하게 음미하고 싶었지만 오늘부터 작업실에 갈 참이라, 들깨탕을 급하게 후루루 마시고 점심때 먹을 김밥을 대충 말아 도시락을 싸고 밖으로 나왔다. 고백하자면, 김밥을 싸는 고 10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처리하고 작업실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늦었다. '한 시간에 한 장... 쓸 수 있을까' 괜스레 마음이 급하다. 급하면서도 별 것도 아닌 일에 혼자 급한 내 모습에 짜증이 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싸온 김밥을 욱여넣으며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의 근황을 묻는 이들에게 '회사를 잠깐 쉬고 글을 좀 쓰게 되었다'라고 말하면,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어머, 너무 부럽다!', '늦잠 자서 좋겠어요' 등. 웬걸,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고 자정을 넘겨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에 몸 담고 있을 때는, 출근하면 업무와 세상 둘도 없는 짝꿍인 것처럼 굴다가도 퇴근해선 업무와 나 사이에 칼 같이 금을 그었다. 금을 그을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격렬하게 꿈꾸던 프리랜서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겠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프리랜서를 '집단이나 조직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판단에 따라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집단, 조직, 구속을 업무환경에서 모두 치워버릴 수 있다니! 언뜻 읽으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읽어보랬다. '자기 자신의 판단' '독자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라 독자적으로?


이것만 보고 할까?(시즌 1,2,3을 정주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유난히 피곤한데 잠깐 눈 좀 붙일까? (눈을 뜰 이유가 없다는 게 함정)

잘 안 써지는데 밖에 좀 나갔다 와서 해야겠다... (나갔다가 돌아와 하는 일은 곯아떨어지는 것)


직장을 다니다 호기롭게 프리랜서로 전향했지만, 스케줄 관리에 실패해 결국 눈물바람으로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온 경우를 적지 않게 목도했다. 나는 절대, 결코, 반드시 그러면 아니 된다! 이를 갈았다.


문제는 이를 갈다 못해 이가 다 부서지려 한다는 거다. 열심히는 좋은데, 그 열심히 나를 초조와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면 눈을 번쩍 뜨고 노트북을 켜고, 자정을 넘겨서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니터만 바라봤다.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있나.


한낮, 고요한 작업실


어제의 나도 그랬다. 물론 정해진 기한 안에 프로젝트를 다 끝내야 하는 건 맞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다.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그 흐름을 깡그리 무시하고 애면글면하고 있었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인정받고 싶은 거였다. 나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맡겨준 분에게, 그리고 글 쓴답시고 출근과 안정적인 수익을 마다한 나 스스로에게, 지금의 선택이 옳았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거였다.


저녁이 되었다. 이 추위에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작업실까지 굳이 나온 이유가 피자였음을 상기하면서 - 잠자리에 들 때 메뉴 하나만 생각하진 않는다. 하루는 세 끼!- 귀찮은 마음과 싸우며 굳이 굳이 내가 좋아하는 피자집으로 향했다. 메뉴판을 살피다 호기롭게 피자 한판을 주문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내 몫의 피자가 나왔을 때 퍼뜩 들었던 생각은 '아, 맛있겠다!'도 아니고 '초코 셰이크도 주문할까?'도 아니었다, '이 한판이 온전히 내 몫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 놓인 피자 한 판이 마치 둥그런 하루와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쪼개든, 어떻게 먹든 이 한판이 온전히 내 몫인 것처럼 내 하루도, 내 인생도 온전히 내 몫이다. 남한테 맛있게 보이려 할 필요도, 정량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며 한 번에 두 조각씩 막 들고 애써 과시할 필요도 없다. 내 앞에 놓인 피자와 하루는 그저 오롯이 둥글뿐. 온갖 토핑이 가득 올려진 피자 한 조각을 조심스레 집어 올렸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피자를 실컷 먹고 남은 조각을 포장해 집으로 향한다. 집에는 들깨채소탕 한 냄비가 고요히 잠들어있겠지. 내일은 식은 피자와 들깨채소탕을 함께 먹어야지.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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