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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03. 2023

2023년 1월 3일

새해를 맞이하며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자정을 넘겨 새벽 한 시, 때로는 두 시까지 유튜브를 들여다보기 때문인데 주로 내가 보는 것은 음식에 관한 것들이다. 먹방이나 요리법. 특히 요리법은 봐도 봐도 너무 재미있다. 정보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만드는 사람의 손놀림이나 표정 때문에 보게 되는데, 만드는 자신도 모르는 채 자신만의 박자를 유연하게 타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어제는, 아 오늘이군. 류수영 배우의 김밥 비법을 보다 요리하는 그의 웃음에 홀랑 넘어가 인스타 팔로우까지 해버렸다. 배우자 박하선 배우에 대한 부러움은 덤이다. 거기서 핸드폰을 끄고 잠을 청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대로 의정부 제일시장까지 가서 주문한 지 20초 만에 잔치국수를 말아준다는 어느 아주머니 영상을 보았다. 과연 경력에 비례하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이란. 찌그러진 양푼 대접에 삶아진 국수를 때려 넣고는 박력 있게 비비는 박자가 예사롭지 않다. 시원시원한 손놀림에 그만 국수가 먹고 싶어 져서, 집 근처의 국수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국수 맛집은 ‘홍제동 잔치국수’라고 뜬다. 커피 한 잔 값이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 국수와 함께 내주는 푸짐한 김치, 아삭한 고추 장아찌로 단골이 많은 곳인 것 같다. 양이 많은 편인데 먹다 보면 어느새 다 먹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어느 친절한 블로거의 안내도 보았다. 역시 여기서 잠을 청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과연 ‘홍제동 잔치국수’만이 맛집인가 싶은 의심으로 그 주변의 국수 맛집을 좀 더 검색해 본다. 아니니 다를까. 다른 국숫집인 ‘장인 국수’가 뜨는데, ‘홍제동 잔치국수’보다 양은 더 적고 가격이 비싼 곳이다. 비싼 가격의 이유는 육수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가게 안을 둘러보니 과연 육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냥 육수가 아닌 보약 육수다. 가게 한쪽 벽에 커다랗게 붙은 육수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보약 육수를 끓입니다. 남해에서 잡은 신선한 멸치(빨간색으로 강조)의 똥을 일일이 제거하고 숙취 해소, 간 기능 증진, 해독 성분이 뛰어난 황태(역시 빨간색으로 강조)와 중국 불로장생 3대 명약 구기자(역시 빨간색으로 강조), 다시마, 보리새우 등을 넣어 몸에 좋은 육수를 만듭니다. 메뉴판을 보고 여기는 왜 비싸냐며 투덜거리는 이가 많아서일까. 메뉴판 아래에도 육수에 대한 또 한 번의 언급이 있다.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 원가가 다른 곳에 비해 2배 이상 더 들어갑니다." 과연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이곳 사장님은 다른 집 육수 원가를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한 숟갈 딱 떠먹어보고 알아차린 건지 어쩐지. 메뉴판 아래에 쓰인 육수에 대한 언급 옆에는 또다시 노란 말풍선으로 국물을 강조해 두었다. 이쯤 되면 국숫집인지 육수집인지 헷갈리지만 말풍선 안에 담긴 말은 이렇다. ”국물이 보약이다” 아직 말풍선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말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면은 남겨도 국물은 남기지 말자”라는 말이 쓰여 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이 집의 면이 다른 집보다 현저하게 적다는 어느 블로거의 말에 따르면, 밥 한 공기를 너끈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곱빼기를 시켜야 양이 알맞다고 하니, 애초에 면을 남길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블로거 역시 육수를 인정하며 진하기가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이 집이 얼마나 걸리는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고는 잠에 들려다가 문득 ‘생로병사의 비밀’을 생각해 냈다. 밀가루 줄이기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는데, 하루 삼시 세끼 잔치국수를 먹을 정도로 국수 홀릭인 어느 아주머니의 먹방이 떠오른 것.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진은 아주머니가 국수를 끊게끔 안내하고 아주머니는 국수대신 생 고구마나 당근을 씹었던 것 같은데, 그럼 역시 잔치국수는 몸에 안 좋은 것인가. 나도 평소에 워낙 먹는 밀가루 양이 많으니 국수는 패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겨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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