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4일

by 꽃반지

무시하셔도 됩니다. 자기 의견을 죽 늘어놓은 후 말끝마다 "무시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붙이는 이가 있었다. 언뜻 듣기에는 굉장히 겸손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그 반대. 회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입지에 있는 사람이니 그런 말을 아무 때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 수 있는 거였다. 실제로 아무도 그의 말을 무시한 적 없기도 하고. 나는 그가 내게 긴 말을 늘어놓은 뒤 처음으로 "무시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붙였을 때를 기억한다. 무시라는 단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것인가 싶어 짐짓 놀랐고, '나는 당신의 무시가 괜찮은 사람이니 당신 역시 나의 무시가 괜찮기를 바란다'는, 바닥에 깔린 은근한 강요를 짐작했다.


무시. 눈에 없다는 뜻. 무시가 괜찮은 사람이 있을 리가. 무시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무시로부터 몹시 안전한 사람.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한 번도 무시받지 않을 걸 아는 사람. 청하는 낮잠이 오지 않아 멀뚱멀뚱 왜인지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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