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야키
새벽 두 시.
미친자처럼 끙끙거렸다.
남들 공부할 시간에 성적이 나쁜 것을 줄곧 염려하다, 결국 또 낮은 성적표를 받아드는 바보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요 며칠이다. 글쓰기에 집중해보겠노라 사원증까지 반납했거늘, 이럴꺼면 착실하게 9 to 6를 고수하면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는 편이 훨씬 낫지싶다. 집중이 안되어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봤지만 영 효과가 없는데다, 떠도는 달팽이처럼 노트북이며 텀블러 따위를 한짐 짊어지고 장소를 옮겨다니느라 소모한 시간과 체력도 만만찮다. 결국은 하루에 채 두시간도 앉아있지를 못한 날이 계속되다보니, 스스로의 한심함에 부아가 치밀어 이렇게 잠못 이루지 못하는 새벽이다. 늦게 잠들면 늦게 일어날테고 늦게 일어나면 작업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그렇다면 나는 또 나에게 '한심함' 딱지를 딱 붙여놓고 하루종일 몰아세우겠지.
요즘의 나는 가장 단순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한다 싶은 것들로. 글을 쓰고 밥을 짓고 가끔 기타줄을 퉁기는, 회사 다닐 때 그렇게나 부르짖었던 '꿈의 하루 패키지 세트'다. 그렇게나 꿈에 그리던 패키지 세트가 드디어 눈 앞에 있는데 삼키질 못하고 있다니.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해..." 김첨지의 처참한 심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결국엔 신랄하게 다그친다. "안 처먹냐!!" 이게 아닌데.
지하철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내게 자리를 양보하며 "임산부 아니세요?" 라고 말했을 땐 웃어넘겼다. 그저 두꺼운 옷 때문이려니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얼굴이 왜 그렇게 부었어요? 못 알아볼뻔 했네." 라는 말을 듣고나서는 상황이 가볍지 않다는걸 알았다. 하루종일 볕도 잘 들지않는 방 안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끙끙거리다보니,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작업이 지지부진해 날카로운 상태에서, 빵빵하게 부푸는 얼굴까지? 대학교 때, 유난히 몸이 깡말라 '춥스'라고 불리던 동기 녀석이 있었다. 멀리서보면 가느다란 몸에 머리만 달린 모양이 꼭 추파춥스를 닮았기 때문이다. 나도 곧 춥스가 되는걸까. 참고로 내가 지금 쓰고있는 책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법'에 관한 책이다. 웃지마세요, 흑.
그 날 밤, 짝꿍에게 전화를 걸어 우동면발 마냥 퉁퉁부은 목소리로 퉁퉁부은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 러닝머신 모델까지 봐둔 참이다.
나 러닝머신이라도 사려고.
빨래걸이를 뭐하러 또 사?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러닝머신의 우리말은 빨래걸이다, 가뜩이나 움직이기도 싫어하면서 러닝은 무슨 러닝이냐, 차라리 나가라, 헬스를 끊어라, 산책을 해라.
나도 만만찮았다. 이번 러닝머신은 다를거다, 후기가 좋다, 움직이기 싫어하니 집에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헬스는 재미없다, 산책코스가 마땅찮다,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나가기 힘들다.
다음날 아침, 이불 속에서 몇 시간을 뭉개고 겨우 일어나 다시 얼마간을 뭉갰다. 나가지 않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겨울이라 춥고, 미세먼지가 심하고, 마땅한 산책로가 없고, 늦게 자서 피곤하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내가
밖으로 나왔다.
계단오르기를 인생3대악 쯤으로 꼽기에 한 층이라도 꼭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스컬레이터 개발자를 칭송하며, 집 앞 골목에서부터 코트 단추를 끌르기 시작해 집에 들어서자마자 등부터 바닥과 입맞춤하는 신체의 소유자.
바깥공기는 너무나...상쾌했다. 허무에 가까운 상쾌함이랄까. 늘 향하던 지하철역을 등지고 반대방향으로 딱 십분을 걸었을 뿐인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눈부시지 않은 햇살과 발끝에 닿는 촉촉한 흙의 감촉, 귀를 어지럽히는 새소리. 공원 구석구석을 밟았다. 개처럼 뒹굴고 싶었다. 도톰하게 쌓인 낙엽들을 밟는 느낌이 특별했다. 푹신한 낙엽 위에 우뚝 서서 괜히 풀쩍풀쩍 뛰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들이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하늘하늘, 나풀나풀... 꼭 저런 움직임을 어디서 봤더라?춤추는 낙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외쳤다.
아, 오코노미야키!
막 구워낸 뜨끈한 오코노미야키 위에 마지막으로 가다랑어포를 뿌려주면, 가다랑어포가 하늘하늘 녹아내리며 꽃잎처럼 춤을 춘다. 낙엽을 보면서 아침 메뉴를 정했다. 아쉽게도 가다랑어포는 없었지만.
오코노미야키는 ‘오코노미(お好み): 좋아하는 것’이라는 뜻과 ‘야키(燒き): 굽다’라는 뜻이 합해진 말이라고 한다. 조리법도 무지 단순하다. 양배추, 물, 계란, 약간의 간장만 있으면 꽤 근사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 수 있다. 재료가 간단한만큼, 풍성하게 넣어주고 오래 익혀야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저는 홀랑 태웠습니다만)
악어처럼 입을 쩍 벌리고서 뜨끈한 오코노미야키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양배추 잔뜩에 고추와 당근도 팍팍 넣고 구워 입안에서 서로 어우러진다. 요즘 나는 어땠나. 재료는 박하게 넣고서 초반부터 강불로 지지는 바람에 냄비에 시커멓게 눌어붙은 내 하루가 보인다. 왜 좋아하는 것들을 넣었는데 맛있게 부풀지 않은거냐며, 부은 얼굴로 팬 바닥을 닥닥 긁는 내가 보인다.
문법엔 맞지 않겠지만, 오코노미하루를 먹고싶다. 좋아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넣고 오래 기다려 익히고 싶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고 싶다. 맛있는 오코노미하루라면 퉁퉁부은 내 얼굴도 가라앉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