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총각김치
씻지도 못하고 불 켠 채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일이 바빠 냉장고에 넣어두고 2주도 넘게 열어 보지도 못했던 엄마가 보낸 까만 비닐을 끌르며 여는 하루다. 김치가 행여 샐까 싶어 꽁꽁 싸맨 비닐을 풀다가 웃음이 피식 났다. 도대체 몇 겹이나 싼 거야. 이게 끝이겠지, 하는데도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비닐이 연달아 계속 나온다. 비닐이 어찌나 많은지 한번 택배를 받고 나면, 곁에 수북하게 쌓인 게 마치 커다란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모양새다.
나 홀로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엄마는 두어 달에 한번 꼴로 택배를 보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칸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엄마 글씨를 찌익 열면 비닐에 꽁꽁 싼 김치, 말린 떡국떡, 귤, 사과 등이 들어있었다. 품목은 늘 엇비슷하다. 김치, 말린 떡국떡, 귤, 사과. 마이쮸 대용량이라든가 노래방 새우깡 같은 큰 부피의 과자도 택배 박스 한편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모두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다. 아니, 여기가 외국도 아니고 과자를 왜 택배로 보내요. 여기서 사 먹으면 되지, 택배비가 더 비싸겠네.
내가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때는 종종 그 비싼 항공택배로 떡볶이와 김밥을 보내주기도 했다. 상자를 끌러보면 예의 그 익숙한 꽁꽁 싼 비닐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물론 중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가지 한국 과자도 함께. 피식.
어렸을 때 TV를 보면 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겠노라고 기어이 한국으로 와서는, 서툰 한국말로 더듬더듬 말을 잇다 끝내 말 대신 눈물로 더듬더듬 보고픈 마음을 잇던 사람들. 그때의 나는 그 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길러준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나 같으면 나 버린 엄마는 절대 안 볼 텐데. 미워 죽겠는데 왜 보고 싶은 거지?
나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들의 마음을 겨우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 그들은 확인하고 싶었을 거야. 물 샐 틈 없는 사랑을. 자기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음을. 구멍 난 빈 곳을 친절히 메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애당초 구멍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사랑을 줄.
아직 컴컴한 겨울 새벽,
오늘도 내 곁에 커다란 비닐꽃 한 송이가 활짝 피었다.
빈 속에 연거푸 집어먹는 김치가 맵다. 속이 뜨끈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