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순한 맛

네, 생일은 뭐 별 것입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by 꽃반지


2월 5일 늦은 11시 59분 59초, 그리고 2월 6일. 잠자리에 누워 생일이 오는 순간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기대나 거창한 포부는 없었지만, 한 살 더 먹었으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 뭐 이런저런 것들을 잠깐 생각하다 잠에 빠졌습니다.


'낀 자'의 설움을 아시려나 모르겠지만,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이전인 1월과 2월 출생의 사람들은 늘 '빠른' 년도 생으로 불리며 애매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그해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보다 '빠른' 월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해 일찍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학년을 배정받았는데, 그럼 거기서는 또 '느린'년도 생이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상한 대화가 오고 가죠.


-뭐? 2월 생이라고? 그럼 빠른이야?

-응

-그럼 나보다 한 살 어리네. 언니라고 해.


같은 해 3월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빠른 과 한 두 달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무슨 언니, 누나냐!'며 자연스럽게 친구를 먹습니다. 불리는 말은 '빠른'이지만 정작 속해있는 집단 기준에서는 '느린'이고, 이렇게 빠르고 느린 아이가 낀 그룹에서는 나이고 뭐고 뒤죽박죽이 됩니다. 기껏 한 살 차이인데 뭐 그리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 세계에서는 한 살 많고 적은 게 꽤나 중요한 일이더군요. (그때는 갖고 있는 것 중에 자랑할 게 나이밖에 없어요. 얘들아, 나이는 많다고 좋은 게 아닌데.)


'낀 자'의 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생일을 대부분 혼자 보냅니다. 바로 겨울방학과 꼭 맞물리기 때문이죠. 매달마다 생일자들을 불러 모아 열던 학급 생일잔치도 방학이면 쉽니다. 흑흑. 정규 교육 과정이 끝나면 이 설움이 끝날 줄 알았지만 웬 걸. 대학에도 겨울방학이 있더군요. 새 학기라 아직 동기들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했는데, 불려 다닌 생일파티가 몇 개인 줄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생일 축하를 하다 보면 정작 나의 생일은 쓸쓸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춥고 앙상한 겨울, 겨울, 겨울! 추위를 뚫고 나온 친구들이 기껏 모여도 갈 곳이 별로 없는 쓸쓸한 2월 생입니다.



다섯 살을 맞은 내 사진을 보면 꼬까 한복을 입고 볼이 터져라 케이크에 바람을 불어대고 있는데, 어른이 되어서 맞이하는 생일은 빵빵한 두 볼에 바람이 슬금슬금 빠지는 것 같달까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가까운 친구들이 가까운 거리에 살 때에는 덕분에 알뜰하게 생일을 챙기곤 했지만, 혼자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도부터는 일부러 챙기지 않으면 어물쩍 넘어가게 되었어요. 언젠가는 혼자 생일을 기념해 방콕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청년들이 제가 딱해 보였는지 생일주를 사주고 사라진 적도 있습니다.


내 생일에 무감해지니 지인들이 생일에도 자연히 무감해지더군요. 매일은 누군가의 생일이고, 나 말고도 축하해줄 사람이 많겠지 하고 축하 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인연들이 많습니다. 참 못 챙기고 사는 성격인데도 주변에는 뭐 그리 따뜻한 마음들이 많아서, 막상 내 생일에는 따뜻한 축하 전화와 문자를 넘치게 받으면서도요. 실은 뭐 생일에만 무감 해졌겠나요. 먹고사니즘의 피로도를 핑계로 모든 것에 무감해져 갔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2016년에 홍콩 친구에게 받은 엽서에 아직도 답장을 못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해마다 답장을 기다리며 새로운 카드를 계속 보내주며 답장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상황이 되자, 어느 해에는 '답장을 보냈다'라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미안함에 죄책감까지 더해졌지만 아직도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니. 생일이 별거냐, 답장이 별거냐, 이 별거냐 인생은 마침내 민족의 대명절 설날까지 건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날이 별거냐. 안 갈래.


친구가 생일선물로 건넨 튤립 한 송이


설날에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원고 작업을 빙자한 방콕 놀이를 했습니다. 어차피 올해 설날에는 할머니 집에도 가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이야 다른 날에 가서 봐도 되고, 어쩌고 저쩌고... 문득 내 나이를 꼽아보는데 내 나이 무렵의 엄마 생각이 나더군요. 내 나이 때 엄마는 여덟 살의 딸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잠깐 아찔했고 갑자기 딸아이와 한 살 터울의 아들이 생각나서 또 아찔했고, 어린 아이라 완벽하게 알 순 없었지만 어렴풋이 체감할 수 있었던 그 당시 우리 집의 경제 상황과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서 아찔했습니다. 그래서 설날이 하루 지난 오늘, 나의 생일에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역에 도착하니 엄마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눈으로 엄마를 발견한 순간 엄마가 저를 꼭 안아주며 '우리 딸, 생일 축하해!' 하며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안경을 내밀었습니다. 맨 처음의 사진이 바로 그 기념샷이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가 뭐라도 사주고 싶어 하기에 괜찮다고 거듭 사양했더니, 이렇게 예쁜 꽃을 한 송이 사주더군요. 저녁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소박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다섯 살 때의 내 사진은 분명히 가족들이 찍어준 것일 텐데, 그 뒤로 맞이한 생일을 언제 가족과 함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어색했어요. 정말로 어색했어요. 그 무뚝뚝한 남동생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말이야, 언젠지 모르겠는데 내 생일이 점점 무심해지더라고. 친구들 모여서 술이나 먹는데 나는 술 싫어해서 잘 안 가고. 그렇게 되더라고. 근데 그렇게 되기 시작하는 게 진짜 위험한 거 같다.


그간 남동생이 생일에 뭘 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친구들 불러서 술이나 먹겠지 했어요. 궁금해서 물어봤죠. 생일에 뭐했어? 혼자 산책했지. 잠깐 또 아찔했습니다. 왜? 술자리 싫고 할 것도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부모님 생신 때면, 곁에 있으면서도 잘 챙기지 못하는 동생을 타박하기 바빴거든요. 하긴 그러고 보니 자신이 태어난 날에 점점 무심해지면서, 다른 것에 여전히 의미를 둔다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자기 생일 못 챙기는 사람이 남 생일 잘 챙길 리가 없고, 남 생일 못 챙기는 사람이 남 마음 챙길 리가 없고, 남 마음 못 챙기는 사람이 내 마음 챙길리는 더더욱 없고. 인생은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더 빨리 흘러가고, 뭐.


그래서 올해부터는 가족의 생일마다 모이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3년의 엽서에 답장을 하지 못한 그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친김에 지난 대화 목록을 뒤져보니, 2016년도부터 해마다 쌓인 '생일 축하한다'는 기록이 있네요. 빨리 엽서를 써야겠어요. 진짜 더 위험해지기 전에.


(*) 다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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