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순한 맛

바글바글 끓는 동안

시금치 된장국

by 꽃반지


글을 쓰고 있거나 쓰고 싶거나 쓸 계획이거나, 어쨌거나 글을 가지고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으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꾸준히'라는 관문이다. 물론 이 관문은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제법 전문가 테가 나는 사람들은 모두 이 관문을 거쳐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모든 '꾸준히'는 프로로 통한다.


열여섯, 바야흐로 풋내 나는 중학생 시절, 짝꿍의 노트 표지에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라는 서양의 격언이나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나도 웹툰은 1만 시간 봤을 텐데-을 굳이 들춰보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뭐든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된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이 '꾸준히'라는 게 정말로 어렵다. 이 사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꾸준히', 그러니까 뭐 한국 이름은 '구준희'일 것만 같은 우리의 꾸준히 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참 매력 없다. 푹푹 찌는 한낮의 여름 땡볕 아래, 500미터를 막 열두 바퀴 뛰고 땀내를 풀풀 풍기며 내 앞에 서있는 사람 같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에선 땀이 뚝뚝 떨어진다. 꾸준히 씨가 살고 있는 사전 예문을 몇 개 갖다 써 본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운동을 꾸준히 하다.
그는 1년 동안 꾸준히 일어를 공부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계숙의 뒤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장에 '꾸준히'만 들어갔을 뿐인데 비에 젖은 옷처럼 꿉꿉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글이글 작열하는 태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 뭐, 사람마다 천차만별일테다. 어쨌거나 나의 편견에서 시작된 이 꿉꿉한 느낌은 한동안 계속될 것만 같다. 운동을 꾸준히 하느라 땀에 절은 옷과, 일어를 꾸준히 공부하느라 생긴 어깨 통증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감시하는 누군가의 날 선 집요함을 먼저 떠올리는 걸 보면, '꾸준히'는 내게 썩 유쾌한 존재는 아닌 듯싶다. 난 어쩌면 꾸준함 포비아 인지도.


'단숨에' '단박에' '한 번에'를 보면 얼마나 가볍고 날렵한지. 단숨에 해낼 수 있는 일들 역시 상쾌하다. 단숨에 마시고, 단박에 올라가고, 한 번에 터득한다! 우리의 일생을 이루는 동사가 그저 뭔가를 마시고, 털어 넣고, 펄쩍 뛰어 오르는 것 뿐이라면 참 좋을 텐데, 뭔가를 보면 한 번에 터득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지능이 출중하다면 참 좋을 텐데, 그래서 싫든 좋든 나는 오늘도 꾸준히의 곁을 맴돌 수밖에.


내가 너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포인트는 어떻게 '꾸준히' 할 것인가로 넘어간다. 사자성어 '와신상담'의 남자 주인공처럼, 밤마다 불편한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쓸개를 물고 씹으며 괴로워야 꾸준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런 분은 와신상담이 아니라 진짜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의 방'에 월세입자로 들어가 딱 1분만 집중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더니, 10년을 꾸준히 했더라는 스토리도 불가능하다. 여느 평범한 사람이라면 해야 함과 하기 싫음 사이에서 어정쩡한 줄타기를 하며, 겨우겨우 해나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글을 쓰고 있거나 쓰고 싶거나 쓸 계획이거나, 어쨌거나 글을 가지고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이므로 나는 '꾸준히'의 글감을, 내가 좋아하고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일상과 접목시키기로 했다. 바로 먹는 것. 시간에 쫓겨 아침을 건너뛰는 날이 있더라도, 하루에 한 끼도 안 먹고 지나가는 날은 없으니 먹는 것에 대해 글을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던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처럼 음식으로 인생을 풀이하는 거창한 일은 못하더라도, 그저 내가 그날 먹고 느낀 것에 대해 써보자 마음먹었다. 문제는 나라는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꽤나 무거워진다는 사실이다.


그 뒤부터 뭔가를 먹을 때마다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다. 당연한 일이다. 밥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고 쓸 수는 없으니. 그렇지만 의미가 점점 의무가 되어갔다. 첫눈 오는 날엔 새알심이 든 팥죽을 만들어 먹으면서 '오, 이 새알심은 바로 창밖에 휘날리는 첫눈의 맛!' 한 줄 끄적여놓고, 흡사 지옥의 늪을 연상케 하는 매생이 무침을 만들면서는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맛있으면 존맛탱!' 또 한 줄 끄적여놓고, 누군가 만든 유자청을 퍼먹으면서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에 얽힌 추억을 잔뜩 풀어놓을 셈이었다. 대학 때 내가 좋아한 오빠가 있었지, 그 오빠는 노래방에 가면 꼭 <유자차>를 불렀지...로 시작되는. 무거워지면 재미가 없다.




요즘 글을 쓴다. 꽤 오랜 시간 회사를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던 '하루 종일 글만 쓰고 살고 싶어요'를 몸소 체험 중이다. 꿈은★이루어진다, 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은 간사하다. 회사로 다시 가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집에 있으면 조용해서 집중이 안되고, 카페에 가면 옆 사람이 부스럭거려서 집중이 안된다. 운 좋게 작업실도 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작업실은 집에서 한 시간이나 걸려 가야 한다. 지하철을 한번 타고 버스를 두 번이나 타야 한다. 날씨가 좋으면 집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억울해서 집중이 안되고, 날씨가 안 좋으면 괜히 저 창밖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싱숭생숭하다. 머리 좀 식힌다며 한번 튼 유튜브는 머리를 썩힐 지경까지 본다. 이쯤 되면 요즘 글을 쓰니?라고 나에게 되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고프다. 배는 꾸준히 고프다. 무엇을 먹을지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생각할 시간이 많다. 냉장고에 누워있는 시금치와 두부와의 운명도 생각해보고 - 어머, 우린 만나야만 하는 운명이었어!- 연근과 유자청의 짜릿한 만남도 생각해보며 - 너는 뿌리, 나는 열매. 이러면 안 돼! - 엄마가 보낸 김밥과 떡볶이와의 결투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둘 것인지 전략에 대한 고민도 한다.


나는 나의 꾸준함은 믿지 않지만, 허기의 꾸준함은 믿는다. 오늘도 그 꾸준함 덕에 나는 빈 냄비에 물을 받아 일단 물부터 끓인다. 물이 바글바글 끓는 동안 무엇을 집어넣을지는 모른다. 갑자기 뿌리채소와 들깨를 왕창 집어넣어 채소 들깨탕을 만들 수도 있고, 두부와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매콤한 두부찜을 만들 수도 있다. 채소 들깨탕을 보며 또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기 시작할 테고. 비에 젖은 꿉꿉한 나의 '꾸준히'는 허기 덕분에 오늘도 이렇게 가스불 앞에 서서 냄비를 휘휘 젓는다. 불의 온기로 젖은 물기를 말린다. 시간이 지나면 좀 가벼워지려나. 에이, 뭐 아니면 어때. 오늘의 메뉴는 시금치 된장국으로 정했다. 물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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