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신 후 내내 미사를 가고 있다.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가까이 다가와 밥 잘 먹으라며 얘기해 주는 사람도 있다. 감사한 일인데 한편으론 이 모든 것들이 지겹고, 때로는(사실은 자주)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싶어서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떠보곤 한다. 현실은 꿈쩍도 않는다.
지난해 여름의 일인데 나를 보러 아버지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내가 서울에서 지낸 지 10년이 넘어서야 처음 와보게 되신 건데, 아버지는 내가 사는 형편을 안쓰러워하며 집안 곳곳을 손봐주셨다. 곁에는 당연히 엄마도 함께였고, 부모와 함께 집 앞을 서성이는 나를 보고는 목소리가 크고 간섭도 곧잘 하는 옆집 할머니가 "엄마 아빠 살아있어서 좋겠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저 나이쯤 되면 그런 마음이 들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1년 뒤에 엄마가 돌아가실 줄 꿈에야 알았을까.
아주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흰나비였나, 노랑나비였나. 아무튼 봄에 무슨 색의 나비를 가장 먼저 보게 되면 부모가 돌아가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꿈해몽처럼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나는 그 뒤로 봄이 올 때마다 나비를 안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올해 봄에 내가 무슨 색깔 나비를 봤더라 생각해 본다. 죄 없는 나비라도 붙들고 탓하고 싶다.
고향집 입구에 걸린 큰 전신거울에는 내가 올해 초에 집으로 보낸 선물과 함께 담겨있던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이 그대로 붙어있다.
"나의 사랑, 아부지 어무니.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합시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는데. 보고 싶다는 말의 뜻을 난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에 담긴 뜻도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