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다큐였더라, <인간극장>이었던가. 노부부의 일상을 다룬 다큐였는데, 별스러울 것 없는 두 사람의 잔잔한 일상에 사람들의 마음이 일렁였다. 아침에 일어나 식탁을 차리는 남편, 책장에 책이 빼곡한 아내의 방, 서로 위하고 아끼며 도란도란 살아가는 삶.
내가 유독 집중한 부분은 남편의 아침상 준비 과정이었는데, 작곡가인 남편은 손이 서툴어 과일 하나를 깎는데도 20분씩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손엔 과일을, 한 손엔 과도를 야무지게 쥐고 사각사각 리듬감 있게 깎는 게 아니라 과일 한 알을 접시 위에 턱 놓고 포크로 찍어 누르고는, 칼을 쥔 다른 한 손은 바들바들 떨면서 껍질을 깎아냈다.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서 내 입에서 "아이고, 아부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과일을 깎는데 드는 품과 시간은 둘째 치고, 접시에 턱턱 칼질을 하다니요. 접시 애호가인 나로서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남의 아침상 준비 과정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나의 아침상 준비의 번거로움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면 보통 물 한잔도 못 마시고 그대로 일어나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는데, 회사로 향하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주문해 둔다. 메뉴는 늘 비슷하다. 쿨라임 피지오, 혹은 허니 자몽 블랙티. 빈속에 뭐라도 벌컥벌컥 마셔야 하루치 노동을 시작할 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가한 요즘은 아침을 잘 차려먹는 편이다. 짜이 한 잔, 사과 한 알, 때로 버터나 치즈를 곁들이는 빵 한쪽. 이렇게 써놓으면 간단한데 이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일단 짜이 만드는 과정이 엄청나게 번거롭다. 대충 일고, 여덟 가지 향신료를 절구에 빻은 다음 찻잎과 잘 섞어 끓이다가 2분이 지나면 오트밀크나 두유 등을 넣고 다시 잘 끓여야 하는데, 자칫 한눈을 팔면 끓어 넘쳐서 가스레인지를 다 닦아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오늘처럼. 빵도 팬에 데우는데 짜이 만드는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 틈에 홀랑 타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일을 잘 깎는다는 것. 설거지는 오죽 또 많나. 절구, 절구공이, 찻잎과 향신료를 걸러낼 때 쓴 채, 짜이 끓일 때 쓴 밀크팬, 빵 데울 때 쓴 팬, 짜이 담았던 잔과 잔받침, 빵 접시, 과일 접시, 티스푼, 티포크...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한 시간쯤은 우습게 지나있고, 나는 가스레인지를 박박 닦거나 눌어붙은 밀크티 팬을 몇 번이나 씻으면서 다른 이들의 미라클 모닝 루틴을 떠올려본다. 이 시간에 다른 걸 하면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지만 할아버지도 나도, 실은 아침상을 차리는 게 즐겁지 않을까. 매일마다 나는 짜이 레시피를 달리해본다. 어제는 생강 우린 물을 넣어서 끓여봤고, 오늘은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마지막에 생강을 갈아 넣어봤다(생강갈이 설거지가 추가되었지만). 우유를 두유로, 두유를 오트밀크로 바꿔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블렌딩 해서 만들 기도 하고, 좋아하는 짜이집 몇 군데서 사온 짜이 티백을 쓸 때도 있다. 빵도 어느 날은 우리 동네 크로와상으로, 어느 날은 호밀빵으로, 또 다른 어느 날은 식빵으로 바뀌고 빵에 따라 곁들이는 것들도 달라진다. 짜이잼, 땅콩버터, 호박버터, 밤잼... 아, 요즘은 날이 점점 추워지니 스파이시 호박라테도 종종 끓이면서 레시피를 수정, 보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