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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0일

당근 raise me up

by 꽃반지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찌뿌드드했다. 몸도 오슬오슬 떨리는 게 요즘 유행한다는 감기인가 싶어 한참을 누워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꼼짝도 하기 싫어 마른입으로 몇 시간을 버티다가, 문득 오늘은 꼭 보내기로 한 택배가 생각났다. 당근에서 어떤 분이 내게 물건을 구입했는데, 어제 보내기로 해놓고는 깜빡해 양해를 구해두었다. 겨우 옷을 입고 도로가에 있는 편의점으로 비척비척 걸었다. 몸이 말을 안 듣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의 무릎과 옆얼굴에 나있던 상처는 대문을 열다가 힘이 없어 뒤로 나동그라지며 생긴 것인데, 그 뒤로 몇 번이나 그랬다며 희미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익숙하게 여닫던 대문 앞에서 나동그라졌을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택배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와 도로 누울까 하다가 창문을 열고 청소를 했다. 엉망인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베갯잇을 벗겨서 세탁하고 청소기도 한번 돌렸다. 아침마다 마시던 차가 떨어져서 빈 박스 겉면에 적힌 성분표를 보면서 가진 재료들을 모아 오래 끓였다. 당연하게도 그 맛이 안 났지만. 며칠 전에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두 시간짜리 영화인데 끊어가며 보느라 하루 내내 봤다. 으, 지루해! 하면서 멈췄다가 다시 보고 으, 지루해! 하다가 다시 이어서 보길 반복했다. 화장실 청소일을 하는 남자 주인공은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이불을 착착 개고 세수를 하고 수염을 정리한다.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뽑아 차를 몰고 도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능숙하고 꼼꼼하게 변기를 닦는다. 점심 때는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무를 올려다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동네의 공중목욕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작은 식당에 들른 다음엔 술 한잔을 하고, 책방에 들러 할인코너를 살펴보며 읽을만한 책을 고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머리맡에 켜놓은 작은 등의 불빛에 기대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날마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데도 새 날을 맞이한 주인공은 그렇게나 기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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