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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0일

달팽이와 비둘기

by 꽃반지

새벽배송으로 받은 상추를 며칠 냉장고에 두었다가 씻는데 뭔가가 붙어있었다. 별생각 없이 물에 흘려보내다가 다른 이의 후기에서 본 달팽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싱크대 거름망을 뒤져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말았다. 하루 이틀 지난 뒤에 싱크대에 붙어있는 달팽이를 발견했다. 냉장고에서 며칠, 또 싱크대에서 며칠 보냈는데도 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달팽이가 꼬물거렸고 반가운 마음에 잎사귀가 무성한 화단으로 옮겨주었다. 잠시 뒤에 보니 달팽이는 잎사귀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비둘기 이야기.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는데 마당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 화분과 화분 사이에 들어앉아 가만히 벽을 보고 있었다. 죽은 건가 싶어서 "비둘기!"하고 불렀더니 (당연하게도)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눈을 끔뻑거렸다. "비둘기 아프냐?"하고 물었더니 (당연하게도)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을 또 끔뻑거렸다. 잠시 쉴 곳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동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향형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둘기는 잠시 뒤 사라졌다. 나는 사람과 비둘기가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 편인데 그 비둘기는 왠지 조금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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