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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pr 15. 2019

키스를 글로 배웠습니다

자기만의 방식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찌 그리도 바람이 불던지


"저요! !"

일곱 살의 봄. 1학년 3 47이었던  정답 맞힐 기회를 얻기 위해 까지 손을 들고 있었다.   주먹 ' 문제는 나만   있다' 확신이 가득 겼다.  선생 내가 답을  맞힐 거라 여겼는지, 한참이나 손을 들고 있었는데도 자꾸 다른 친구들에게 발표 기회를 주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어느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교실을 빼곡  손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마지막 잎새처럼  손만이 았을 , 선생 마침내 나에게 회를 주었다.

"개나리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납니다!"

"정답!"

모두  문제를 내가 맞혔다! 상품 아무것도 없었지만 노란 개나리처럼 기분 환해졌다. 속으로 외쳤다. "우리 집엔 올 컬러 자연도감 80권이 있다고! 짜식들아!"

 

나는 세상  났다. 한글을 다섯 살 무렵 맞아가며 배운 후로 - 트라우마가 하다는 부작용 습니다 - 주변의 모든 것을 무섭게 어댔. 간판, 전단지, 자막, 명함... 연한 수순으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세상 모든 책을 어버리겠다는 제법 야심 찬  꾸었다. 디귿, 리을을 모른다고 나를 먼지 나게 두들겨 패던 어머니, 자신의 람대로 자식이 곧잘 한글을 읽을  아니라 책을 워낙 좋아하니 몹시 뻐하며  사다 날랐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웅진 어린이마을> 전집과 <올 컬러 자연도감 80>이다. 올 컬러 자연도감 80권은  많은 비밀을 내게 려주었다. 개나리는 꽃이 먼저 핀다는 사실, 달팽이는 암수가 없다는 사실, 나팔 씨방 건드리면 ! 하고 터진다는 사실. (이런 비밀들이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 되진 않는다는 사실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세상과 처음 관계 맺은 방식 고수했다. 무엇을 하기 전에 일단 을 들여다봤다. 한 권으로 성에 차지 않으면 두 권, 세 권, 네 권...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방식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가지고 있는 요리책만 2백  권이 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층에 2층 오르더라도 꼭 엘리베이터를 타던 내가 하정우의 <걷는 남자>를 읽고서는 가끔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구달의 <아무튼 양말>을 읽고선 한 벌 옷 값에 맞먹는 양말을 사본 적도  있다. 누군가가 '이거 좋대'하고 말해주면 여간해선 잘 듣지 않으면서, '이거  좋다'하고 책에 써놓으면 일단 엄청난 신뢰를 가지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쩌겠는가.


지난 토요일, 친구의 청에 못 이겨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썩  내키지 않아  가겠다고 세 번이나 거절했더니, 아예 친구가 표까지 끊어주며 같이 가자고 했다. 어쩌면 나랑 그저 연극 한 편 보고 싶은 거였는데,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굴었나 싶어 뒤늦게 미안했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연극은 예상대로 따분하고 지루했다. 배우들은 열심었지만, 도무지 극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두 배우가 등장한다.  한 명은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보채고, 한 명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며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똑같은 대사와 행동을 자그마치 1시간 동안 반복한다. 어쨌든 극이 마무리는 지어져야 하니, 마지막에 세 번째 배우가 등장한다. 두 배우는 세 번째 배우가 바깥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바깥은 어떤지, 지금  나가도 될지, 어떤 준비물이 더 필요한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세 번째 배우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1시간가량의 기다림과 망설임을 반복하는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보면서, 누구나 실패하기 싫으니까 하고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두렵고, 누구에게나 아프니까. 실패보다야 끝없는 권태가 안전할 테니까.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책에 적혀있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모든   읽었다 하더라도, 인생 모든 상황에 대비해 일일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볼 는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동기 남자애가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 애는 가슴이 아프다며 나를 붙들고 울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봐도 잘 안 나와. 어떻게 하면 이별의 아픔이 사라지는지."


얘가 지금 사람을 놀리나 싶어 빤히 바라본 그 애의 눈동자는 너무 슬펐고, 진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이가 없었다. '김치볶음밥 맛있게 만드는 법'처럼 '이별 후 상처를 극복하는 법'에도 매뉴얼을 기대했던 걸까. 그때는 정말 황당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지금은 그게 그 애만의 방식이었구나 하고 생각다. 자기만의 방식을 누구나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비슷한 요리책을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잘 들여다보지 않고, 그러면서도  요리책을 한 권씩 사모을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리력이 상승하고 있노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나의 근거 없는 신념체계처럼 말이다.



세상은 넓고,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실패는 아프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피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나처럼 책에 고개를 파묻는 사람도 있고, 이별 극복의 매뉴얼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몸으로 부딪쳐보는 사람도 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난다. 누군가는 몸으로 온 땅을 구르며 흙먼지를 묻혀봐야 직성이 풀리고, 누군가는 손끝에 먼지 하나 묻는걸 못 견뎌해 망원경으로 멀찍이 세상을 내다본다. 자기만의 방식, 나는 자기만의 방식이라는 말이 좋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  아플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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