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아저씨는 눈물흘리는 이 청년을 어디에 데려다줄까. 이때다 싶어 돈 십만 원은 족히 나오는 저 멀리까지 밟아버릴까, 아니면 아저씨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 장소에 그를 내려놓을까. 아저씨도 가끔 찾아가 혼자 울곤 하는 그곳에.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확신에 찬 듯 보일 때가 있다. 확신에 차서 걷고, 확신에 차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확신에 차서 무언가를 해낸다. 사람들 모두 확신에 차서 어디론가 향하는 듯 보일 때, 나만우물쭈물하는것처럼느껴질때,노래 가사처럼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를 외치고 싶은그런 하루가 종종 찾아오면 나는 어물쩍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창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면, 모두 맹렬한 속도로 일제히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가야 하는곳을 잘 알까? 사정은 버스안도 마찬가지다. 각 정거장마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올라탄다.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어떻게 확신을 확신할까. 확신이 확실하다고.
나는 또 어물쩍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뭐 하나 바뀐 것 없는 듯한 풍경이지만, 회색 도시에 드문드문돋아난 분홍색으로 계절을 가늠한다. 벌써 봄이구나. 또 봄이 왔구나. 어김없이 꽃이 피었구나.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꽃은 지금 피어나야 할 것을 알았을까. 식빵 사이에 발린 잼처럼, 촘촘한 회색 사이에 슬며시 드러난 분홍색을 눈으로 계속 좇는다.
턱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는것처럼 풍성하고 붉은 수염을 자랑하던 밥 로스 아저씨를 기억하는지. 그가 새하얀 캔버스에 물감 묻힌 붓을 몇 번 툭툭 -정말로 툭툭이다- 찍기만 하면, 캔버스는 금세 아름다운 호수며 숲이며 꽃밭이 되었다. 단 몇 분만에.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라 티브이에 코를 박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마법을 선보인 후에, 씩 웃으면서 꼭 이 말을 덧붙였다.
"참 쉽죠?"
버스 창밖으로펼쳐지는풍경도 마치 밥로스 아저씨가 툭툭 찍은 붓터치 같다. 툭툭.자,벚꽃이 피었네요. 참 쉽죠?
많은 것들이 갑자기 눈 앞에 등장한다.
밥 로스 아저씨의 붓터치 몇 번이면 쨘! 하고 완성되는 호수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꽃망울을 터트리며 눈앞에 다가온 봄처럼, 그어디서도 읽지 못한 시처럼,너무아름다워귓가를떠나지않는선율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이 많은 것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뿅 하고 나타났을까.
얼마 전 친구가 이런말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막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줄줄 쓰고 이런 줄 알았어, 작가는."
10주간의 소설 쓰기를 마치던 마지막 밤에, 20년 차에 접어드는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많이 읽으세요, 꾸준히 쓰세요. 멈추지 마세요."
차창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어디론가 달린다. 저 멀리또가까이 활짝 피어난 꽃들이 보인다. 어디론가 달려가기까지, 꽃을 피워내기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기까지, 살아가는일에 확신을 가지기까지, 당신들에게도 수많은 우물쭈물이 있었겠지. 그들의 깜짝 등장 이전, 무대 뒤의 사정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참 쉬워 보이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