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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pr 11. 2019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모두가 확신에 찬 듯 보인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김연우, <이별택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아저씨는 눈물 흘리는 이 청년을 어디에 데려다줄까. 이때다 싶어 돈 십만 원은 족히 나오는 저 멀리까지 밟아버릴까, 아니면 아저씨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 장소에 그를 내려놓을까. 아저씨도 가끔 찾아가 혼자 울곤 하는 그곳에.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확신에 찬 듯 보일 때가 있다. 확신에 차서 걷고, 확신에 차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확신에 차서 무언가를 해낸다. 사람들 모두 확신에 차서 어디론가 향하는 듯 보일 때, 나 우물쭈물하는 것처럼 느껴질 , 노래 가사처럼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를 외치고 싶 그런 하루가 종종 찾아오면 나는 어물쩍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창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면, 모두 맹렬한 속도로 일제히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가야 하는 을 잘 알까? 사정은  안도 마찬가지다. 각 정거장마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올라탄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어떻게 확신을 확신할까. 확신이 확실하다고.


나는 또 어물쩍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뭐 하나 바뀐 것 없는 듯한 풍경이지만, 회색 도시에 드문드문 돋아난 분홍색으로 계절을 가늠한다. 벌써 봄이구나. 또 봄이 왔구나. 어김없이 꽃이 피었구나.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꽃은 지금 피어나야 할 것을 알았을까. 식빵 사이에 발린 처럼, 촘촘한 회색 사이에 슬며시 드러난 분홍색을 눈으로 계속 좇는다.


턱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처럼 풍성하고 붉은 수염을 자랑하던 밥 로스 아저씨를 기억하는지. 그가 새하얀 캔버스에 물감 묻힌 붓을 몇 번 툭툭 -정말로 툭툭이다- 찍기만 하면, 캔버스는 금세 아름다운 호수며 숲이며 꽃밭이 되었다. 단 몇 분만에.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라 티브이에 코를 박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마법을 선보인 후에, 씩 웃으면서 꼭 이 말을 덧붙였다.

"참 쉽죠?"

버스 창 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마치 밥 로스 아저씨가 툭툭 찍은 붓터치 같다. 툭툭. , 꽃이 피었네요. 참 쉽죠?



많은 것들이 갑자기 눈 앞에 등장한다.


밥 로스 아저씨의 붓터치 몇 번이면 쨘! 하고 완성되는 호수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꽃망울을 터트리며 눈앞에 다가온 봄처럼,  어디서도 읽지 못한 시처럼, 너무 아름다워 가를 떠나지 않는 선율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이 많은 것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뿅 하고 나타났을까.


얼마 전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막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줄줄 쓰고 이런 줄 알았어, 작가는."

10주간의 소설 쓰기를 마치던 마지막 밤에, 20년 차에 접어드는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많이 읽으세요, 꾸준히 쓰세요. 멈추지 마세요."  


차창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어디론가 달린다. 저 멀리  가까이 활짝 피어난 꽃들이 보인다. 어디론가 달려가기까지, 꽃을 피워내기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기까지, 살아가는 에 확신을 가지기까지, 당신들에게도 수많은 우물쭈물이 있었겠지. 그들의 깜짝 등장 이전, 무대 뒤의 사정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참 쉬워 보이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아,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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