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회사를 다니다 보면 매 요일이 놀랍도록 비슷해진다. 늘 똑같은 공간, 늘 똑같은 사람들, 늘 똑같은 업무 속에서 나의 하루가 피고 저문다. 모니터를 종일 들여다보느라 늘 블라인드가 드리워진 창밖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 어쩌다 연이틀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은 동료가 울분에 차 오래도록 슬퍼하는 것도, 스물다섯 먹은 친구의 은퇴하고 싶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벌써 며칠이나 지난 일인데 자꾸 "어제..." 하면서 말을 꺼내는 동료가 왜 그러는지도 이제는 알겠다. 브런치에서 소개하는 상당수의 인기글도 퇴사하고싶다거나퇴사했다는 내용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상의 권태를 버거워하고 있다는 반증.
벌여놓은일은어찌나많은지,다이어리를펼치면칸칸마다일정이빼곡해서한숨이푹나온다.책 읽는시간이나요리를위한시간,그냥멍하니누워있는시간처럼내가가장중요하게생각하는항목은어디에두어야 할지모르겠다.이미빽빽한시간의틈을비집고"이건정말중요한 거야!"하고우악스레욱여넣는다.시간표를꾸역꾸역삼키다 보면도망가고싶어 진다.
3.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같은 사무실에도 (내 수준에선) 일탈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단결근을 하고 잠수를 탄다거나, 동료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샤우팅을 하며 싸운다거나, 하루가 다르게 머리색을 바꾼다거나 하는 일들. 남몰래 가슴 한구석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어떤날엔나도다이어리를덮어버리고"그래!오늘은삐뚤어질 테다!"하고과감한삐딱선을타기로결심한다.그래 봤자매일매일이 웃기고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나는 시트콤의 주인공은 아니겠지만. 실행에옮긴다는게고작이런것들이다.
-사무실과같은건물2층에있는중식집에서탕수육먹기(다음날배앓이로고생)
-지하철 말고버스 타고퇴근하기
-오예스랑초코파이랑한꺼번에같이먹기
- 치약거품 삼키기
- 다들 봤고 나만 안 본 영화 보기
4.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얼마간 한국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이나 하기로 한 것들을 오랫동안 미뤄두다 다시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의외의 안도감이다. 나 없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
내가 잠시 일상을 이탈한 동안에도 세상이 안전한 이유는 다른 이들의 굳건한 일상 덕분이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언제까지 남들만 태우며 살건가!" 핸들을 확 꺾어 동해안으로 떠나버리고, 빵집 언니가 "이제 빵은 지긋지긋해!" 하며 갑자기 빵집 문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지하철이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지 않고, 분리수거 트럭도 사라져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일상이 가진 든든한 무게 덕분에, 누군가는 잠시 일탈한다. 세상의 하루를 구성하는 수십억만 개의 일상 중, 가끔 몇이 빠져도 세상은 흔쾌히 눈 감아준다.
오늘도 나의 일상과 누군가의 일상이 포개진다. 언젠가 버스기사 아저씨가 동해안으로 핸들을 꺾어도, 빵집 언니가 홀연히 떠나버려도, 건강원 아줌마가 갑자기 햄버거를 내다팔아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내 일탈의 얼마간은 그들의 일상에 빚진 것이기 때문에. 묵묵히 맞딱들이는 일상의 무게가 가끔 버겁다면, 누군가가 내 덕분에 잠깐 일상에서 놓여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로가 안된다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