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운 좋게 집 앞에서 지하철역 가는 버스를 잡아탈 때가 있다. 허겁지겁 올라탄 버스 창밖으로,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준비에 분주한 빵집 주인이 보인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부부가 교대로 운영하는 과일 좌판과 늘 쐑쐑하는 소리를 내며 허연 김을 피워 올리는 세탁소가 있다. 아,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건강원도 빼놓을 수 없지. 그 앞을 지날 때면 가게 앞에 사과, 포도, 호박 따위를 가득 널어놓거나 뭔가를 짜내고 껍질만 수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월수금 밤 열한 시면 분리수거 트럭의 육중한 바퀴 소리가 골목을 울린다.
일상에는 반복이 들어있고, 반복은 따분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일상을 따분해하고 그 따분함 앞에 굴복한다. 일상은 권태의 다른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일탈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화끈했던곡 <일탈>의 가사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추는 것도 일상에 묻어있는 눅진하고 지겨운 무게들을 털어내기 위함이리라.
2.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특히 회사를 다니다 보면 매 요일이 놀랍도록 비슷해진다. 늘 똑같은 공간, 늘 똑같은 사람들, 늘 똑같은 업무 속에서 나의 하루가 피고 저문다. 모니터를 종일 들여다보느라 늘 블라인드가 드리워진 창밖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 어쩌다 연이틀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은 동료가 울분에 차 오래도록 슬퍼하는 것도, 스물다섯 먹은 친구의 은퇴하고 싶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벌써 며칠이나 지난 일인데 자꾸 "어제..." 하면서 말을 꺼내는 동료가 왜 그러는지도 이제는 알겠다. 브런치에서 소개하는 상당수의 인기글도 퇴사하고 싶다거나 퇴사했다는 내용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상의 권태를 버거워하고 있다는 반증.
하루는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일상이 하 수상해서, 내가 대체 뭘 하나 가만 들여다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씻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 빈 도시락통 설거지를 하고, 운동도 좀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간다. 이런 하루가 계속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있다.
벌여놓은 일은 어찌나 많은지, 다이어리를 펼치면 칸칸마다 일정이 빼곡해서 한숨이 푹 나온다. 책 읽는 시간이나 요리를 위한 시간, 그냥 멍하니 누워있는 시간처럼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 겠다. 이미 빽빽한 시간의 틈을 비집고 "이건 정말 중요한 거야!"하고 우악스레 욱여넣는다. 시간표를 꾸역꾸역 삼키다 보면 도망가고 싶어 진다.
3.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같은 사무실에도 (내 수준에선) 일탈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단결근을 하고 잠수를 탄다거나, 동료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샤우팅을 하며 싸운다거나, 하루가 다르게 머리색을 바꾼다거나 하는 일들. 남몰래 가슴 한구석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어떤 날엔 나도 다이어리를 덮어버리고 "그래! 오늘은 삐뚤어질 테다!" 하고 과감한 삐딱선을 타기로 결심한다. 그래 봤자 매일매일이 웃기고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나는 시트콤의 주인공은 아니겠지만. 실행에 옮긴다는 게 고작 이런 것들이다.
- 사무실과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중식집에서 탕수육 먹기 (다음날 배앓이로 고생)
- 지하철 말고 버스 타고 퇴근하기
- 오예스랑 초코파이랑 한꺼번에 같이 먹기
- 치약거품 삼키기
- 다들 봤고 나만 안 본 영화 보기
4.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얼마간 한국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이나 하기로 한 것들을 오랫동안 미뤄두다 다시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의외의 안도감이다. 나 없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
내가 잠시 일상을 이탈한 동안에도 세상이 안전한 이유는 다른 이들의 굳건한 일상 덕분이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언제까지 남들만 태우며 살건가!" 핸들을 확 꺾어 동해안으로 떠나버리고, 빵집 언니가 "이제 빵은 지긋지긋해!" 하며 갑자기 빵집 문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지하철이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지 않고, 분리수거 트럭도 사라져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일상이 가진 든든한 무게 덕분에, 누군가는 잠시 일탈한다. 세상의 하루를 구성하는 수십억만 개의 일상 중, 가끔 몇이 빠져도 세상은 흔쾌히 눈 감아준다.
오늘도 나의 일상과 누군가의 일상이 포개진다. 언젠가 버스기사 아저씨가 동해안으로 핸들을 꺾어도, 빵집 언니가 홀연히 떠나버려도, 건강원 아줌마가 갑자기 햄버거를 내다팔아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내 일탈의 얼마간은 그들의 일상에 빚진 것이기 때문에. 묵묵히 맞딱들이는 일상의 무게가 가끔 버겁다면, 누군가가 내 덕분에 잠깐 일상에서 놓여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로가 안된다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