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 집 앞 골목에서 여느 때처럼 종지에 담긴 물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는 몽골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주쳤다. 같은 대문을 쓰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몽골 할머니다.
모르는 척 집으로 쏙 들어갈까 생각해 걸음을 빨리했지만, 그녀도 마침 물을 다 뿌리고 나를 뒤따라 들어오는 터라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인사래 봤자 말 한마디 안 통하기에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정도지만. 그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더니 그녀가 늘 그렇듯 나를 향해 어눌한 한국어로 큰 소리로 "안느어엉!" 하고 답했다.
"안느어엉!"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가다 불현듯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려 하늘에 물을 뿌리는 시늉을 했다.
"이-거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는 뜻이겠지. 그녀가 간단한 단어는 알아들을까 해서 다시 물었다.
"기-이-도?"
그녀는 아까보다 더욱 큰 동작으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내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 거리자 그녀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다시 "안느어엉!"하고 인사했다. 잘 자, 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을 때, 나에게는 선택권이 두 개 있었다. 대문을 열면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개의 현관문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이사를 하고 나서도 종종 텅 빈 옆집 문을 열어보곤 했다. 마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는 심정으로. 얼른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길 바랬던 주인아주머니에겐 미안하지만, 한편으론 내심 옆집에 아무도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오래된 집이라 벽이 얇고, 벽을 타고 온갖 소리가 전해질 테고, 그러면 나는 또 밤새 인상을 찌푸려야 할 테니까.
한동안 비어있던 옆방에 들어온 건 몽골인 부부였다. 어느 주말, 옆집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그 안을 기웃거리다 마침 주인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주인아주머니는 종종 나를 마주치는 날이면, 나를 붙들고 여기저기 안 아픈데가 없다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한다.
"원래 내가 외국인은 안 받으려고 했는데... 지식인이야, 지식인."
"지식인요?"
네이버에서 일한단 뜻인가.
"응. 몽골에서 공부하던 부부래. 아주 한국말을 잘해. 아이도 아주 똑똑하고."
아이요. 아이라고요? 온갖 소음의 근원인 아이요? 아이라는 말을 듣고 그때 나는 잠깐 절망에 빠졌다. (아이에게 가끔 케이크나 과자를 건네면 좋아서 지르는 소리가 벽을 타고 내 방안에 울려 퍼지긴 하지만, 그때마다 잠깐 나는 미소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머니의 '지식인'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한 대문 안에는 몽골인 부부 외에도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남자 한 명이 더 살고 있다.
몽골 할머니는 처음부터 등장한 인물은 아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갑자기 몽골 할머니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몽골에서 한국에 잠깐 놀러 온 등장인물1 정도로 생각했으나 그녀는 아예 그곳에 거취를 마련한 듯했다. 그리고 이 대문 안에 사는 어느 누구보다도 나와 가장 접점이 많은 것도 의외로 그녀였다. 대문 안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이나, 집 앞 골목 앞에서 종지에 담긴 물을 하늘로 뿌리는 모습 외에 내가 그녀를 '사회' 속에서 처음 본 것은 집 앞 버스정류장이다. 처음엔 그녀를 못 알아봤다.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차려입은 그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니 몽골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매일 나와 비슷한 시각에 집에서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나처럼 어디로 출근하시는 걸까?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하실까? 간혹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물을 방법이 없어서 패스, 패스해버렸다.
한 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지만, 그들에게 인사해도 돌아오는 피드백은 시큰둥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눈을 마주치고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몽골 할머니는 늘 인사를 받아주었고, 내가 종종 그냥 지나칠라치면 나에게 먼저 '안느어엉!"하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그녀가 종지에 담긴 물을 뿌리는 뒷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눈이 새하얗게 내린 어느 겨울 아침에도, 미세 먼지가 그득한 어느 낮에도, 그리고 어제처럼 자정이 다 되어가는 이슥한 밤에도 그녀는 집 앞 골목 앞에 서서 어딘가를 향해 물을 뿌렸다. 나는 그녀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집으로 휙 들어가곤 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뭘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나는.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해 물을 뿌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어젯밤 그녀가 나에게 몇 차례나 '기도'를 설명해주려는 것을 몸짓 앞에서, 나에게 무시로 건네던 우렁차고 어눌한 "안느어엉!"을 생각하면서, 나는 문득 소통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은 그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내가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늘 하늘로부터 어떤 대답을 듣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