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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May 31. 2019

과녁을 향하지 않아도

300명의 당신께 감사합니다

구독자 300명 돌파 셀프 축전. 마우스로 그려보았습니다 :)


'구독자가 300명을 돌파했습니다!'


핸드폰에 구독 300명을 알리는 알람이 반짝였습니다. 브런치 플랫폼에서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구독자가 늘어날 때마다 핸드폰에 알람이 떠요. 'ㅇㅇㅇ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하고요. 그럴 때마다 닿을 리는 없겠지만 그 이름에 대고 조그맣게 "고맙습니다."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혹시 들으셨나요? 마음이 착한 사람한테만 들린다는... 흠흠!)


블로그와 페이스북 같은 SNS가 활성화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문턱이 많이 낮아졌고, 낮아진 문턱을 성큼 넘어 글쓰기의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을 주위에서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책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존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만이 가질 수 있었던 전유물로 인식되었다면, 지금은 '그 무엇이든 책이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강좌도 많이 생겨났지요. 불과 몇 개월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쓰게 해 준다는 강의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내 발목을 잡는 트렌디 


작은 출판사에서 마케터로 잠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1차 회식을 마치고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배경 화면이 충격적이었어요. 한 무대에 너무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함께 올라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헉, 혹시 한 그룹인가?

"저기 배경에 나오는 애들이 설마 한 그룹인가요? 너무 많은데?"

그러자 옆에 앉아 애꿎게 노래책만 뒤적거리던 부장님이 가볍게 쏘아붙였습니다.

"넌 마케터라는 애가 티비도 안 보니? 프로듀스 101이잖아! 요새 얼마나 핫한데."

티비를 안 본 지 8년이 넘었다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한 사람도 빼지 말고 노래하라'는 부장님의 명령대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핫한' 여자아이들을 배경 삼아 (의도하진 않았지만) 회식 분위기에 촥 하고 찬물을 끼얹은 것도 바로 접니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마이크를 꼭 잡은 손에 땀이 뚝뚝 떨어지는 8월이었습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웃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한 번은 <코미디 빅리그> 공개녹화를 갔는데 고문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고 지루하고 따분했습니다. 다들 웃는데 혼자서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내내 '저게 재밌나?'라는 생각뿐이었거든요. 모두 HOT에 열광해 직찍과 굿즈를 그러모으는 바람에, 덩달아 잠깐 유행이라는 열차에 탑승하긴 했지만 금방 시들해져 내렸습니다. 학창 시절, 전 앨범을 모으며 닳도록 들었던 가수는 바로 핫해지기 한참 전의 윤종신이었고, 모두 눈물을 펑펑 았다는 드라마도 왠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드라마지 뭐.' 해마다 유행하는 스타일, 컬러도 크게 와 닿지 않고 SNS에서 핫하다는 맛집도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고 보면 유행이라는 기차에 도무지 탑승하지 못하는 이 정서는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이미 저 멀리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겐 아직 먼 진중함 


유행이 가볍고 발랄하다면, 그 반대편에는 진중함이 있죠. 유행 따위 끄덕 없이, 고요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제가 스무 살부터 시작해 블로그에 혼자 써온 이런저런 글이 약 삼천 편인데요, 이게 어느 정도 모이자 '아, 책으로 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도무지 어느 카테고리로 묶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연애 얘기도, 요리 얘기도, 하루하루 흘러가는 얘기도 다 있는데 이게 과연 재밌나? 왜 난 한 우물을 못 파고 파다만 구멍만 잔뜩 있는 느낌이지? 늘 한 분야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나를 은근히 책망했었는데, 모든 분야에 다양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야! 하고 인정해버리면 되는데, 왜 그렇게 나를 탓하며 살았을까 싶었어요.


에세이집을 내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에 에세이집에 걸맞은 원고를 골라내다 보니, 이번엔 웬 걸. 글 실력이 모자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의심을 하면서 바쁜 일상을 핑계로 글쓰기를 놓아버렸습니다. 회사에서 일로 하는 '기능적'인 글쓰기 역시 글쓰기라고 치부하면서요.



그렇지만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건, '이제 혼자 쓰고 읽던 내 글을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당찬 포부와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개발 중인 서비스 때문에 브런치에 글 하나를 올렸는데, 그게 덜컥 메인에 걸리면서 시작됐어요. 그 뒤로 꾸준히 글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먼지 쌓인 일기장처럼 가끔 생각나면 들춰보는 기분으로 글을 썼지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렇게 일주일에 한편씩 꾸준히 올리게 된 것은 작년 여름부터고요.


트렌디하지도 않고, 한 우물을 가진 전문가라 하기엔 아직 애매하지만 곧 저의 첫 책이 나옵니다. 에세이집이 아니고, 오랫동안 공부해오던 마음에 관한 소설입니다. 마음에 관한 소설이라니! (역시 트렌디와는 거리가 멀죠?)


올해 두 권을 출판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또 한 권은 요리책이 될 것 같아요. (요리책이라니! 에세이는 언제 내는 거죠?)


'한 우물러'는 아니지만, 꼭 우물을 파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여기저기 구멍을 내다보면 운 좋게 물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 우물이 없어서, 이가 시릴 정도로 깊고 차가운 물을 양껏 대접해드리진 못하지만 맑고 시원한  한 모금쯤은 드릴 수 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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