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부모는 무엇을 먹습니까

식구

by 꽃반지
내 아버지의 점심


며칠 전 점심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점심으로 뭐 드세요?" 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요즘은 이렇게 배달도 해준다네."라는 문장과 함께 초점이 날아간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빈약한 도시락이었다. 순간 마음이 싸르르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외근이 잦았다. 지방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얼마 만에 한 번씩 집으로 오곤 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서는 흙냄새와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대부분의 식사 때마다 어머니는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 한 공기를 아버지의 몫으로 마련해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가 수저를 들기 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를 가리키며 "밖에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니 따뜻한 밥 드시라고 기도하자."라고 말했다. 동생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나는 대충 눈을 감고 기도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아버지가 저렇게 따뜻한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초점이 흔들린 아버지의 도시락 사진을 보는 순간, 왜 갑자기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릴 적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내 식구의 변천사


식구. 食口.

말 그대로 밥을 함께 먹는 입이다.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으면 자연히 벌어진 누군가의 입구멍이 보일 것이니, 그래서 가족은 곧 식구였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두 가족이 나온다. 한 가족은 같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먹는 장면이 세 번 이상- 집에서, 기사식당에서, 남의 집에서- 나오는 반면, 다른 한 가족은 단 한 번도 모여서 무언가를 함께 먹지 않는다. 남편은 차 안에서 갈비찜이 먹고 싶다고 하고, 아내는 부엌에서 아들이 먹고 싶다고 했다가 변덕을 부려 먹지 않게 된 짜파구리를 혼자 먹으며, 딸은 가정부가 깎아준 과일을 제 방에서 먹고, 아들은 밤늦게 부엌의 냉장고를 열고 케이크를 정신없이 퍼먹는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행위는 곧 정서적 끈끈함으로 대치된다.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내 식구였다. 배가 고프든 고프지 않든 정해진 때에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대입을 위해 학교에 하루 종일 처박히면서부터는 짝꿍이나 앞뒤에 앉은 아이들이 내 식구였고, 대학에 가서는 선후배와 애인이 내 식구였다. 취직을 하고 나서는 또래 동료나 같은 부서 상사가 내 식구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식구가 없는 끼니의 횟수가 늘어났다. 가족이 식구가 되지 않은지 오래였고, 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알아서 다들 잘 먹고 있겠지, 뭐.


혼자 살면서부터는 내 끼니를 챙기기 벅찼다. 바쁘고 귀찮고 외롭고 쓸쓸했다. 아무거나 먹었고,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한 번씩 고향집에 내려가면 정신없이 먹고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혀를 찼다. "집에 붙어 있지,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누..." 당신이 좋은 부모였으면 내가 그렇게 기를 쓰고 집에서 나왔겠냐는 울화가 목구멍까지 찰랑, 차올랐다.


식구가 두렵다


나는 부모를 꽤나 적극적으로 미워해왔고 이 감정으로 인해 내 인생이 탈진될 정도였다. 그 정도를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 마음의 바닥 끝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고, 바닥을 팠더니 '내가 엄마 인생을 망쳤다'라는 죄의식이 있었다. 내가 없었으면 엄마는 쉽게 이혼할 수 있었고, 그러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


엄마의 서가엔 단 한 권의 책이 거꾸로 꽂혀있었는데 바로 이혼에 관한 책이었다. (거꾸로 꽂아놓으면 못 볼 거라는 엄마의 순진한 생각이었을까?혹은 그 반대인지도.) 엄마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진취적으로 살길 바랬지만 엄마의 젊은 시절은 그렇지 못했고, 엄마의 그런 모습이 어린 내게 고스란히 박혀 상처가 되었다. 나도 바닥을 파기 전에는 결코 실체를 몰랐던 감정이었다. 아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결혼을 하지 않기로, 그러니까 식구 같은 건 만들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했던 것 같다. 내게 입구멍을 내보일 누군가는 곧 나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그 책임의 무게가 내 인생을 짓누를 수도 있는 거니까. 그 아득한 구멍의 깊이를 알 수 없어 하염없이 두려웠다.


우리 가족이 늙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작은 마당의 들풀은 키를 높여 자라고, 햇살 아래 피어난 붉은 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아버지와 뱃살이 두툼해진 어머니가 있다. 귀를 찢을 듯한 고함소리와 서럽게 우는 소리와 뭔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이제는 없다.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게 한 가족의 젊음이라면 우리 가족의 젊은 시절은 다 갔다. 그땐 그랬었지, 하고 젊은 시절을 회상할 뿐이다. 마당에 앉아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늙은 아버지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 들린다.


어머니는 내게 가끔 결혼 이야기를 한다. 좋은 사람 없니.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가 봐. 결혼하고 애도 낳아야지. 난 애 안 낳을 건데, 애 낳으면 뭐가 좋아. 한 인간을 길러낸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데. 내가 인간이 덜되서 누구를 못 길러... 엄마는 애 낳아서 좋았어? 좋았지 그럼. 고생했잖아. 그래도 좋았어.


어제 친구들과 갑자기 한강에 갔다. 편의점에서 산 오천 원짜리 돗자리를 펴놓고 맥주 몇 캔이랑 바나나우유 같은 걸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중 하나가 "어렸을 때 엄마가 붕어빵 장사를 했는데 말이야, 옆에는 치킨 집이 있었거든." 하고 말했다. 그냥 스윽 지나가는, 영화관에서 틀어주는 영화 시작 전 예고편같이 흘러가는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 얘기가 너무 좋았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붕어빵 장사를 했다면 그 얘기를 못 했을 거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냐면 내가 엄마의 발목을 잡아서 붕어빵 장사를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자책의 비수를 스스로에게 백번도 넘게 겨누면서 살았을 테니까. 정작 그 친구는 엄마가 붕어빵을 줘서 좋았고, 옆에 있는 치킨집 아저씨랑도 친해서 자주 얻어먹었다고 해맑게 이야기했는데.


가족 = 식구



아버지의 도시락 사진을 보고 나서 계속 마음이 싸르르했다. 아버지에게 매끼 도시락을 싸드릴 순 없으니 멜론을 집으로 보냈다. (멜론은 흔해진 지금도 여전히 귀한 과일 대접을 받는다.) 보내고 나서 아버지에게 "멜론 좋아하세요?"라고 전화로 물었더니, 날씨가 더우니 그런 거 보내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전,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멜론 이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한참을 웃었다.


나는 요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엇을 먹는지 궁금하다. 매 끼니를 같이 할 순 없지만, 이 더운 여름날 멜론을 먹는 어느 하루가 있을 테니까 그걸로 족하다. 물리적으로 내 가족이 식구가 아닌 지 오래되었지만, 내 마음의 바닥에서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서부터 나는,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식구가 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쩝쩝, 후루룩 거리면서 끼니를 함께 나눌 누군가를 인생에서 가져보는 것이 꽤 괜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몫으로 준비했던 따끈한 밥 한 공기가 아른거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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