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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ul 22. 2019

나는 만 사천 원짜리 사람입니다  

여름밤의 팥빙수는 더할 나위 없어라


꿈. 꿈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쩜 그렇게 역할이 명확한지 모르겠다. 통유리 창으로 오후의 햇빛이 느슨하게 스미는 오후, 처음 보는 얼굴의 내 남자 친구(처음 뵙겠습니다, 제 남자 친구이시라고요.)가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앉은 테이블 위에는 샛노란 레몬색의 남자 로퍼 한 켤레가 신선한 빛깔을 뽐내며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는 양팔로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른한 시선으로 노획물을 감상하고 있다. 꽤 비싼 명품 브랜드다. 여느 때처럼 그는 막 명품 쇼핑을 마친참이다. (처음 봤지만 '여느 때'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내 꿈에서는 등장인물 설정이 꽤나 명확하다. 그는 명품 쇼핑을 좋아한다.)


가까이 다가가며 그의 이름(처음 뵙는 분이라 꿈에서 깨고 나니 이름이 기억 안 난다)을 부르자, 줄곧 로퍼를 향해있던 나른한 실눈이 나를 향한다. 그가 나를 보고 해사하게 웃었다.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남자라 꿈이긴 하지만 왜 나의 남자 친구인지 궁금했는데, 나를 향해 웃는 미소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갈수록 '아, 내가 남자의 이 얼굴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얼굴에 드리운 웃음이 부드럽고 맑았다. 눈코입 위에 투명하게 비치는 얇은 종이를 한 겹 덧댄 느낌. 그는 새로 산 로퍼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알아봐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오지만, 오즈의 마법사도 아니고 이거 뭐야. 레몬보다 더 레몬 같은 컬러에 나는 어깨를 흠칫 떨면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린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그가 이런 색깔을 찰떡같이 소화할 수 있는 남자라는 걸 알고 있다. 자, 이제 사랑하는 남녀가 마주 앉았고 카페는 널찍하고 햇살이 스미는 공기는 부드럽다. 내 꿈의 감독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사건이 일어날 차례. 레디, 액션!


갑자기 검은 가죽 재킷을 걸친(아니, 이 날씨에 가죽 재킷이라고요?) 흑인 남성이 고요한, 그러나 힘 있는 걸음으로 우리가 마주 앉은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방금까지 고요가 깃들어있던 남자 친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왜? 무슨 일이야. 그가 마약을 했다. 삼시세끼 챙겨 먹는 밥처럼 사대던 명품도 다 소용이 없었던 거야? 그저 쇼핑을 좋아하고, 구김살 없이 컸고, 철딱서니가 없는 꼭 그만큼 맑고 유순한 그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다. (사건 치고는 좀 심심한데 꿈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사건이었다.) 고개를 떨어트린 그를 향해 발사한 내 목소리에 화가 담겼는지, 실망이 담겼는지, 위로가 담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아닌 훈수질을 꼭 그때 해야 했는지.

"누구야, 네가 누군지 알아야지. 너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지."

그러자 고개를 툭 떨어트린 그가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넌 누군데? 넌 누구냐고. 넌 네가 누군지 알아?"


알람 소리에 깨어났다. 레몬색 로퍼와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맞이하는 월요일이다. 난 백수고.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낀 것은 실은 꽤 오래전이다. 승부욕 넘치고, 누구보다 악바리같이 노력했는데 서울대를 노리며 재수를 하지 않아서? 아니면 오라는 은행에 원서를 넣지 않아서? 상사의 성추행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대기업 인턴직에서 뛰쳐나와서? 글 쓰며 살아보겠다는 어리석은 꿈을 좇아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대체 그 첫 단추가 어디 있는지 아직도 몰라서?


월급이 밀리나 싶더니 결국 우리 팀부터 구조조정이 되었다. 첫 단추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꿰어대기만 하던 단추 달기를 그만하고 싶었지만, 막상 하루 만에 실업자가 되니 기분이 묘했다. 이번 주까지 정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퍼뜩 떠오른 것은 슬프거나 후련하다는 감정보다는 '결혼할까?'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1인이 꾸리는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결혼할까라는 생각 앞에서 비로소 내가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다시 내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야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돈을 위해 내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물론 이 모든 의무를 남편에게 지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집에 남편이 있다면, "자기야, 나 잘렸어!"라고 집에 들어서며 괜히 밝은 척을 해보는 나에게 남편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그래, 고생했어. 좀 쉬는 것도 좋지."라고 진심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그렇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꽤나 절실한 한 마디를 건네주었겠지. 좀 쉬어도 된다고.  


엄마가 환갑인데 나는 실직자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그때, 이미 부모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자식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부와 명예, 철마다의 패키지 해외여행으로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릴 수 없으니 이제 남은 마지막 하나는 부모의 은근한 소원인 첫째딸의 결혼이다.


배우자에게 원하는 목록을 체크리스트로 작성한 뒤, 그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결혼한 이가 있었다. 전 직장 동료였는데 그 체크리스트가 꽤나 구체적이었다. 키 165 이상, 인 서울 4년제, 연봉 얼마 이상, 가장 잘 나온 사진과 가장 못 나온 사진 각 한 장씩(외모의 평균치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조건들... 타협은 전혀 없는, 물건을 고르듯이 그가 선택한 배우자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이맛살을 찌푸렸다. 결혼이 장사도 아니고 그게 무슨 사랑이냐며 혀를 찼다. 그는 편하다고 했다. 그가 열광하는 마블 영화를 함께 볼 수 없고, 그가 디자인한 작업물에 대해서 의견을 구할 수 없지만, 소울메이트라고 느꼈던 오랜 여자 친구 대신 선택한 아내이지만, 가끔 그녀의 부재를 떠올리지만 그는 결혼생활이 편하다고 했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뭔가가 잘못된 것은 모두 사랑 때문이니까. 내 인생을 한번 사랑해보겠다고, 나를 한번 걸어보겠다고 설친 결과가 결국 이 꼴이니까. 에라이, 씨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올곧게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하고 컸다. 사랑은 내 인생의 최대 이슈였다. 그렇지만 반짝반짝 레몬색의 로퍼처럼 빛나던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빛이 바랬다. 서로 마주 앉아 밥을 나눠먹고, 시시콜콜한 하루를 이야기를 하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어깨에 기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과 책에 대해 토론하는 그 사이에 상처를 주고받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미처 몰랐던 상대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했다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닦아도 닦아도 광이 나기는커녕, 시커먼 구두약을 바른 것처럼 레몬색이 빠르게 퇴색되었다. '완전하거나 제대로 되어 있다'라는 뜻의 올곧게를 사랑에 갖다 붙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안 걸까? 사랑은 본디 엉망진창이지만, 전 직장 동료의 배우자 고르기용 체크리스트는 항상 올곧을 수 있었다.


결혼이나 할까. 한 사람에 대한 절절한 사랑 없이도 결혼 같은 거 할 수 있지 않을까. 체크리스트만 있다면 적어도 불편해질 일은 피할 수 있으니까. 남은 미모와 몸매를 모두 쥐어짜고, 선해 보이는 웃음을 얇은 종이처럼 눈코입에 덧씌우고 상대방이 좋아할 법한 대답을 골라 정성스럽게 해 주면, 체크리스트에 부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남편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될 수도 있겠지.


어젯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의 근황과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신당동에 몰려가서 떡볶이와 볶은밥을 먹고 유명한 팥빙수집에서 딸기빙수와 팥빙수를 시켜놓고 함께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서로 얼굴이 작게 나오려고 애를 쓰면서. 한참을 깔깔 웃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아, 만 사천 원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하고 진심 어린 감탄을 했다. 그날 우리가 나눠먹은 떡볶이와 팥빙수 가격을 인원수대로 나누면 만 사천 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아, 나는 그냥 만 사천 원짜리 사람인가 보다.


명품을 좋아하고 마약을 하는 처음 본 남자 친구가 눈물 가득한 눈동자로 내게 물었던 (어쩌면 꽤나 유치한)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나는 이렇게 한 치 앞도 모를 앞날을 고민하고 걱정하는데 TV에서는 재벌가 자녀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편안한 얼굴로 마약 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참 부러웠다고, 이룰 것이 없어 권태로운 삶이란 과연 어떤 기분일까 절절하게 느껴보고 싶다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고.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누군지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고. 하루하루 뭔가를 이루면서 살고 싶다고.


서로 마주 앉아 밥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하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어깨에 기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과 책에 대해 토론하는 그 사이에 상처를 주고받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몰랐던 모습에 깜짝 놀라며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했다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음에 낙담하더라도.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나는 사랑이 좋으니까,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고 그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으니까, 사랑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내 삶에는 사랑밖에 없으니까, 이게 뭐야 에라 씨발, 하고 욕이 나오더라도 결국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꿈속의 내 남자 친구는 그 샛노란 로퍼를 어쨌을까. 샛노란 로퍼를 잠깐 빌려 신고 뒤꿈치를 두 번 탁탁 치면 도로시처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존재하지도 않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며 정신없이 슬퍼하다가도 뒤꿈치를 두 번 탁탁하면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 집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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