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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02. 2019

어느 채식주의자의 고백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방콕의 비건 레스토랑


엄마와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의 첫 여행이라 일정이며 잠자리- 본인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녀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고는 데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므로 진지하게 방을 두 개 잡을까 몇 며칠 고민했다-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식사였다.


나는 올해 초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밥이나 먹자는 동생에게 "나 이제 채식해. 짜식아!"하고 '채밍아웃'을 함과 동시에, 늘 가던 고깃집에는 못 간다고 통보했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낙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나물 비빔밥 정식을 시켜놓고 열심히, 맛있게 먹고 있는 내 눈치를 가족 세 명이서 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내일부터 안 먹으면 안 되나?" 동생이 내 옆에서 백숙을 뜯으며 진지하게 한 말이다.



채식은 별게 아닌데


나는 채식'주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채식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여기에다 '주의'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니 괜히 부풀려지고 무거워진 느낌이랄까. 굳이 나서서 채식을 한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채식주의자임을 밝힌 후 1초 정도 침묵이 감돈다- 어쩔 수 없이 채밍아웃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상대방의 제안이나 어김없이 고깃집에서 열리는 회식 자리를 완곡히 거절해야 할 때다.


지난달의 이야기다. 지난한 오전 회의가 끝난 후 상사가 "복날인데 삼계탕이나 같이 하지."라고 말했다. 빠질 수 없는 자리라, 담당자에게 삼계탕 집에 삼계탕을 제외한 다른 메뉴가 있는지를 물었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맨밥과 김치를 먹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배려해 회식 자리가 한정식 집으로 변경되었다. 기쁨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는데, 사람들이 한정식 집에서 끝도 없이 수육을 리필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상사가 "이럴 거면 차라리 고깃집을 가!"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 한 사람 좋자고 한 일이 된 것 같아 식사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나도 좋지 않았지만. 차라리 삼계탕 집에서 맨밥에 김치를 먹는 편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누구를 위한 회식이었나.


치앙마이의 비건 레스토랑


태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완전한 비건식에 대한 기대는 사실 접고 있었다. 고기가 섞인 음식을 먹게 된다면 골라내야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관광객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수준급의 비건 식당이 상당히 많았고 굳이 '비건'이라고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어디서든 쉽게 비건 메뉴를 찾아볼 수 있었다. 햄버거 집에는 고기 대신 버섯을 패티로 굽거나 튀긴 버거가 있었고, 투어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식사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동네 구석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베지테리언이라고 이야기하자, 주방에 있던 아가씨가 나와서 "계란은 먹어요?" 하고 되물어주었다. 여섯 명이서 한 조가 되어 실습하는 요리 수업을 들을 때도 나는 고기 대신 두부와 버섯을 이용해 요리할 수 있었다. 태국 요리에 꼭 빠지지 않는다는 피시 소스는 간장으로 대체했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을 위한 음식에는 오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원래 오이가 들어가는 메뉴라면 주문하기 전 오이를 빼 달라고 할 것이다. 그를 가리켜 사람들이 '오이 혐오 주의자'라고 이야기 하진 않는다. 그런데 채식주의자가 한국에서는 마치 확고한 사상가처럼 이상한 색채를 띠는 것 같다. 회사에서 노골적으로 나에게 "너 결혼하면 남편 밥상은 어떡할 거야?"라고 묻는 남자도 있었다. 속으로 "당신 같은 남자랑은 결혼 안 하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면서 "결혼했는데 아내가 채식주의자면 어떡하실 거예요?"하고 되물었더니, 그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본인이 찾아먹으면 된다. 결혼 전에 오이를 못 먹는데, 결혼 후에 남편이 오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눈물을 삼키며 오이를 먹어야 하나? 거 참. 요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것이고, 결혼을 한다면 함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상차림에 올리면 된다.



자랑도 부끄러움도 아닙니다


얼마 전, 비건 페스타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만난 내 글을 읽은 관계자분이, 본인도 동물 때문에 채식을 시작했다며 "채식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라는 말을 했다. 그때는 흘려 들었는데, 나중에 찬찬히 고민해보니 그 말이 내 안에 걸려있었다. '자랑'. 채식이 과연 자랑할 일인가? 채식을 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반대로 채식을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 자연히 비난의 손가락을 들 수밖에 없다. 채식을 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채식은 자연히 '주의'가 되고 '사상'이 되고 '신념'이 된다. 이럴 때는 다시 오이를 대입한다. 오이를 먹지 않는 일이 자랑할 일인가? 하고.


물론 채식과 오이는 동등한 비교 선상에 있지 않다. 나도 그렇지만, 채식을 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동물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육식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동물들이 유린당한다. 오이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적어도 내 몫의 고기가 될 뻔했던 동물의 생명은 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는 나를 '자랑'으로 내세운다면, 나는 나와 반대 지점에 있는 이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다. 혐오를 디디고 선 존중을 경계한다. 그건 진정한 존중이 아니니까.


채식을 관계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전 고기 구워 먹는 걸 좋아합니다." 하고 말하는 이에게 "저는 채식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더니,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꾸어서 "아, 채식 건강에 좋죠! 저도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소가 죽는 걸 봤는데 그 뒤로 고기 먹을 때 생각나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뭘 어쩌란 말인가. 고기는 먹지만 소를 불쌍해하면서 먹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달란 말인가?



치앙마이 국립공원을 트래킹 하면서 작은 마을에 들렀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들이 뛰놀고 있었다. 종종거리며 걷는 오리 떼, 엄마 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 개와 돼지들. 그 모습이 예쁜지 엄마도 병아리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곁에 은근히 붙어 서서 "병아리 너무 예쁘지? 그러니까 이제 치킨 먹지 마."라고 슬쩍 말했는데, 엄마는 단호했다. "아니, 맛있겠는데."


나의 아버지는 불판 위에 구워 먹는 삼겹살을 최고로 친다. 엄마는 백숙을 잘 끓이고 동생은 비엔나 소시지라면 사족을 못쓴다. 내가 나를 자랑하지 않고, 그래서 고기를 먹는 다른 이들을 혐오하지 않기를. 다른 생명에게 최대한 빚을 덜 지면서 살아가 보기로 한 내 신념을 고요히 지켜가기를, 가끔 만나 밥을 먹는 우리 가족의 식사가 여느때처럼 평화롭기를 바라는 한 채식주의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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