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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07. 2019

행복을 이루고자 먹습니다

자연의 선물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 두 손바닥을 맞붙이고 스님이 외는 오관게를 따라 읊는다. 교회에 찬송가가 있는 것처럼 불교에는 불교 교리를 담은 게송이 있는데, 오관게는 스님들이 식사 전에 외우는 게송이다. 입으론 스님의 목소리를 따라 하지만, 머릿속은 눈 앞의 음식 생각뿐이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내가 오관게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마음에 콕 걸리는 구절 때문.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바로 여기. 아니, 눈 앞에 놓인 음식이 무슨 산해진미도 아니고 기껏해야 두부, 버섯, 당근이 전부인데 내가 이 정도도 못 먹나 하는 반항심이 들었다. 내가 뭐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이 정도 음식 받는 걸 부끄러워해야 해? 불쑥 싹을 틔운 반항심은 오관게를 할 때마다 키를 높여 자라났고, 매번 마음에 걸리는 그 구절은 나만의 흐으으음으로 성실히 대체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흐으으음..."



뭘 그런 거까지 먹어요?  

오관게와 나와의, 정확히는 오관게를 향한 나의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스님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키를 높일 줄만 알던 내 반항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스님들은 재료 하나를 가지고도 쪄먹고, 부쳐먹고, 튀겨먹고, 구워 먹는 다양한 방법을 요모조모 알려주셨다. 평소에 당연히 버렸던 부분들도 스님의 손 끝에서 알뜰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놀랍고 흐뭇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여름엔 늘 수박의 손잡이라고 여겼던 하얀 속껍질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수박 하얀 부분을 잘게 썰어 나물처럼 무쳐먹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이거 먹는 사람은 할머니 밖에 없을 거라고 짜증을 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잘 배워놓을 것이지, 이제 와서 돈 주고 배우는 이 철없는 손녀딸.


한 번은 내 또래의 아가씨 두 명과 같은 조에서 요리를 했다. 완성된 요리를 먹을 만큼 각자 접시에 덜어먹자는 내 의견과는 달리, 그녀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완성된 요리를 한 번에 접시에 담았다. 조금 먹은 뒤에는 남은 음식을 싸갈 통이 없다며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연스럽게!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음식이 풍요로운 환경-빵 사면 들어있는 스티커 때문에, 빵 사서 스티커만 빼고 빵 버리던 세대가 우리 세대입니다-에서 자랐으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났다. 화가 오래가서 더 놀랐다. 한번 틀면 몇 시간씩 넋 놓고 보던 유튜브 먹방 시청도 저절로 끊게 됐다. 가녀린 소녀가 라면 30개를 한 번에 끓여먹고, 뿌링클 치즈볼 100개를 쌓아놓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 어디에서도 음식의 소중함과 음식에 대한 감사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유튜버들도 있다). 오관게를 할 때마다 '이까짓 버섯'이라며 투덜대던 나는 어디로 갔나.



행복하니까 먹어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좋은 차를 마시듯 오관게를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는 요즘이다. 게송 중에 오관게를 가장 좋아한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도 차차 이해된다. 마지막 구절 중 '도업을 이루고자...'는 '스님들이야 도 닦으니까 당연한 거지만, 굳이 나에게 해당 사항이 있겠나'는 생각에 그리 와 닿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정효 스님이 '도업'을 '행복'으로 바꿔 오관게를 읊어주셨다. "행복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먹습니다."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치듯 행복이 가볍게 일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을까.

내 덕행으로 받기 겸손해지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약으로 삼아

행복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먹습니다."


가끔 손이 바쁜 조교님을 도와 수업 준비할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조리실, 분량의 재료를 테이블마다 놓는다. 버섯 한 개, 호박 한 개, 고추는 빨간 것과 파란 것 각 세 개씩. 개수를 맞춰 재료를 접시에 담아내고 있자면 미처 눈여겨본 적 없던 버섯갓의 예쁜 주름, 고추의 찬란한 빛깔, 호박의 싱싱한 풋내를 비로소 마주한다. 이들이 하나의 씨앗으로 세상에 와서 나와 마주하기까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문득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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