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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01. 2019

내 마음의 오신채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어떤 일에든 꼭 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에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가, 판도라에게는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가, 롯의 아내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있었다(물론 셋다 어겼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 사찰요리도 마찬가지. 나무에 달린 것이든,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든, 땅 아래 뿌리를 내린 것이든 채소라면 어느 것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단, 오신채五辛菜를 제외하고. 오신채라니? 처음 들어보는 채소 이름인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도 있을 텐데, 오신채란 다름 아닌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채소'를 뜻한다. 파, 마늘, 부추, 흥거, 달래를 꼽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흥거 대신 매운맛을 내는 양파를 포함시킨다.



몸의 오신채

오신채를 쓰지 않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집단생활. 보통 절에서는 적게는 몇십 명, 많게는 몇 백 명까지 함께 생활하는데, 향이 강한 재료는 서로에게 불편감을 불러올 수 있어 사용을 금한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가리켜 '마늘 냄새난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도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파, 마늘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잠깐 잊었던 '얼큰한' 향기가 물씬 풍겨오곤 한다. 둘째는 수행. 사찰음식은 기본적으로 수행식이다. 스님들이 마음을 닦는데 도움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재료로 요리한다. 오신채는 매운맛, 즉 뜨거운 성질을 가진 채소라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쉽게 흥분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뜨거운 성질의 채소를 금하다 보니, 스님들의 몸은 대체로 차다(게다가 머리카락도 없으니 겨울에는 정말 추우실 듯).


오신채를 금하는 이유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보통 큰 일을 앞두면 '기운 나게 잘 먹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몸에 는 음식을 먹는다. 스님들은 하루 종일 공부하는 데다, 고기도 먹지 못하니 오히려 채소라도 잘 먹어서 기운이 펄펄 나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뜨끈하게 몸을 데워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가라앉히는 게 도움이 된다라... 스님들은 으레 그런가보다 하고 흘려들었다.



마음의 오신채

스님들이 "절대 센 불에서 하지 말고, 미지근한 불에서 뭉근히, 오래 익혀야 합니다"하고 강조하실 때가 있는데, 뭔 차이가 있을까 싶어 기다림을 못 참고 센 불에 휙 요리했다가 홀랑 망한 적이 몇 번 있다(역시, 하지 말라는 걸 꼭 하고 보는 사람의 심리란). 요리 대신 맛볼 수 있는 건, 넘쳐버린 냄비와 시커멓게 탄 프라이팬을 닦으며 몰려오는 씁쓸한 후회 한 점이랄까. 


꼭 요리할 때뿐 아니라, 돌아보면 내가 사는 방식이 그랬다. 재빨리 이루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몇 권도 부족한 스케줄러에는 저마다 해야 할 일이 빼곡했고,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의 삐그덕거리는 마찰을 열정이라 애써 착각하며 살았다. 힘이 빠져 시들해진다 싶으면, 나를 어르고 달래고 채찍질하며 풀가동 상태로 만들려고 애썼다. 끓어오르는 열정의 힘을 맹신했고, 차게 식을까 두려워 삶에 쉼표를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보니 알겠더라.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끓어 넘쳐 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기에 차가울 정도로 고요하고 묵묵한 기다림이어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걸. 오신채를 꼭 몸으로 먹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 오신채도 있다는 걸. 돌아보면 나는 마음으로 오신채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잘해야 해, 빨리 해야 해, 인정받아야 해, 성공해야 해... 들끓는 마음이 괴로워 날뛰는 걸 모른 척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실상을 인정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의 내가 삶에서 이루고 싶은 일이 꼭 세 가지다. 아름답고 건강한 몸, 따뜻하고 강한 마음, 그리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실력. 뭣도 모를 때는 빨리 하겠다는 의지만 들끓어 난리를 쳐댔고, 빨리 할 수 있다는 주변의 속삭임에 자주 휩쓸렸다. 한 달이면 10킬로 빼준다는 다이어트 약 광고는 버스 탈 때마다 보이고, 한 달이면 책 한 권 뚝딱 쓴다는 강의가 요새 그렇게 인기란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일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일도, 한 글자에 마음을 담는 일도 아직 나는 참 어려운데. 몸을 위해 오늘도 불 앞에 서고, 마음을 위해서 시간 내어 천천히 산책하고 오래 들여다본다. 어제보다 나은 글을 위해 기분에 관계없이 매일 컴퓨터 앞에 앉는다. 고요하고 묵묵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오신채를 멀리하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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