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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23. 2019

오늘의 날씨

나는 서울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무형의 시간을 저마다 어떻게 인식할까. 하루의 대부분을 시간표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은 칸칸이 잘 구획된 밭이나 팔레트의 모양으로, 모니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은 모니터 하단의 숫자 형태로 시간을 인식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블라인드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빛의 색이나 농도의 변화로 시간을 인식할 수도 있고, 요즘처럼 추운 계절은 살갗에 닿는 온도로 시간을 인식할 수도 있겠다. 실은 이 모두가 내가 시간을,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이 모양이니, 색이니, 온도니 하는 옷을 입혀가며 무형의 시간을 인식하고 더듬고 그 속에서 살아온 방식이다.


그렇다면 무형의 시간이 한데 모인 것 같은 '삶'이라는 것은 각자 또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한 권의 책이니 흐르는 강물이니 하는, 흔히 말하는 그저 그런 비유로 인식하고 있을까. 시간표의 무수한 칸이 벽돌처럼 빼곡히 쌓여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높이 같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질량과 부피를 자랑하는 큰 덩어리 같기도 하다. 내가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듬어 내는 방식은 커다란 화살표였다. 한 개인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어떤 커다란 방향. 어딘가를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크고 단단하고 분명한 화살표.



1. 죄책감

시간이라는 걸, 삶이라는 걸 인식하고 더듬고 살아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살표가 어딘가를 가리키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실제로 화살표 따위는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삶을 화살표로 인식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된 감정 하나가 있었다. 휴가도 끝난 여름의 끝무렵, 태풍이 몰려와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제주도로 갑자기 내려가 만나게 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누군가는 8년을 꼬박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도 죄책감 때문에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본다고 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사는 게' 도무지 뭔지 갑갑증이 몰려왔지만, 나라고 별 수가 있었나. 다니던 회사의 경영악화로 하루 만에 백수가 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학원 등록이었다. 하루에 다섯 개를 다녔다. 하루 종일 책가방을 메고 학원을 전전하다 지쳐고 지쳐서 떠난 게 제주도였다. 내게는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도무지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명확한 어딘가를 가리키는 화살표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묻지 않지만- 의문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답을 해줄 수 없음을 비로소 알았기에- 틈만 나면 누구든 관계없이 물었다. "제가 가는 방향이 맞는 건가요?" "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요?" 끊임없이 내가 딛는 발걸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대부분 내가 가는 방향이 맞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내 눈빛이 너무 절박해 보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별생각 없는 대답이었을 수도 있다. 다들 자기가 뭘 하는지도 잘 모르니까. 차라리 누군가가 "야, 인생에 그딴 게 어딨어. 그런 거 생각하면서 사는 순간 좆되는 거야!"라고 시원하게 한마디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2. 의미

올해 여든 넷인가, 여든아홉인가 어쨌든 80대임은 분명한 외할아버지가 스타벅스에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스타벅스에 처음 와본 할아버지는 왜 사람들이 이런데 와서 차를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무의미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무의미를 손녀에게도 전가시켰다.

"무의미하게 살지 말고 뜻있게 살아라."

외할아버지가 70대에는 어버이날에 식당을 박차고 나갔지만-잡지사에서 글 나부랭이나 쓰지 말고, 이제 그만 공무원 준비나 하라는 말씀에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솟구쳤다-이제는 스타벅스 자동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 양손으로 잔을 꼭 쥐고 온기를 느꼈다. 난 이게 의미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인식하고 더듬는 인생이란 반듯한 도로일 수도, 차곡차곡 쌓은 아파트 높이일 수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내가 정의하는 무의미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고,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서 기뻤다. 이제는 더 이상 상처 받고 울면서 문밖을 박차고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 이 글에도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의미 따위가 무엇인가요, 대체.



3. 나른한 가능성

점심, 간단하게 김밥 한 줄이나 하려고 했는데 아는 분과 함께 하게 됐다.

"인생 뭐 별거 있는 거 같지? 다 똑같아, 이십 대나 삼십 대나 오십 대나... 나 봐."

세상도 모르고, 꿈만 야무지게 큰 나이에는 진짜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니까 뭐라도 되긴 되겠지만, 그 '뭐'가 굉장히 크고 빠르고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줄 알았다(물론 그렇게 한 사람들도 많다. 부럽다). 교복을 입고 친구와 팔짱을 꼭 끼고 야자 때문에 학교에 늦은 밤까지 남아서 주로 하던 말은 이런 거였다. 친구는 회사원이 되고 싶어 했고, 나는 친구가 회사를 다닐 때쯤이면 내 집과 내 자동차가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며칠 전 그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는데 유산을 했다는 이야기를 흘리듯 담담하게 했고, 나는 가끔 동네 부동산 유리벽에 붙은 매물을 노려본다. 운전도 못하니까 자동차는 괜찮은데, 그래도 집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집이 있어야 그 뒤에 친구와 나눴던 시시껄렁한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마련되고, 그래야 겨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젊었고 젊고 앞으로도 당분간 젊을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대개 '젊은 사람'이다. 그리고는 다들 힘주어 말한다. 넌 젊잖아. 젊으니까 뭘 못해. 젊죠. 그렇지만 젊은이도 사실 은밀하게 타협하고 포기한답니다. 젊었던 당신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4. 열심히 쓸쓸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행위는 내 인생 3대 사치 중 하나다. 시간과 노동을 들여서 책을 빌리고, 또다시 시간과 노동을 들여서 빌린 책을 돌려주러 간다니. 요즘은 사치롭게도 종종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가면 깜짝 놀랄만한 사실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노인들이 열람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처음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수많은 노인들을 마주했을 때는 '와, 공부 되게 열심히 하시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도서관에서든 수많은 노인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노년에 대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분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열람실에 앉아 신문을 펴놓고 꾸벅꾸벅 조는 할아버지,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는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 그도 아니면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잘 볼 수가 없었다). 이분들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 무엇을 빌리고, 무엇을 돌려주려고 도서관에 있는 걸까. 시간과 노동을 들여 시간과 노동을 빌리고 시간과 노동을 돌려주려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곧잘 도서관에 갔다. 외할아버지는 컴퓨터도 없으면서 키보드를 실물 크기로 인쇄해 책상에 놓고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자판을 외웠다. 중국에 갈 일도, 주변에 중국인도 하나 없는데 중국어를 공부하셨다. 70대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셨다. 그때는 '와, 공부 되게 열심히 하시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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