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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03. 2019

아무렇지 않지 않아요


뺨에 닿는 선득한 느낌에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몽롱한 상태로 얼굴을 훔치면 흘러내린 눈물이 한가득. 영문을 모르는 눈에서는 아직까지 눈물이 흐르고 있다.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내가 함께 엉엉 울다가 뺨에 흐른 눈물이나 내가 우는 소리에 놀라 번쩍 잠에서 깰 때가 가끔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꿈을 되짚어보면 '이게 그렇게 울 일인가?'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이틀 전 아침도 그랬다. 눈물을 닦으면서 꿈을 더듬어보니, 실없는 내용에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이게 뭐가 그렇게 슬픈 거야... 여느 때처럼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넘어가려는데, 문득 오래 잊고 있었던 운동화 한 켤레가 떠올랐다.



안 맞는 운동화는

다섯 살 때였나, 여섯 살 때였나. 엄마랑 운동화를 사러 갔다. 인어공주가 그려진 하얀색 바탕에 밑창이 보라색이라 맘에 쏙 들었다. 문제는 사이즈였다.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몇 치수 큰 걸 신어야 했다. 신고 걸어보라는 신발가게 아저씨의 말에 운동화를 신고 매장 안을 걸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온 발가락으로 운동화 밑창을 힘껏 움켜잡았다. 너무 힘을 줘서 발가락 끝이 다 아렸다. 걸을 때마다 덜거덕 거리는 운동화를 보고 엄마는 너무 큰 것 같다며 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고 운동화를 신은 채 냅다 밖으로 뛰었다. 결국 운동화는 내 품에 들어왔지만, 발에 맞지 않고 덜거덕 거리던 운동화는 결국 뒤꿈치에 상처만 가득 남겼다.


어른이 되어서도 안 맞는 운동화 움켜잡기는 계속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괜찮은 척하느라 결국엔 다치는 일을 하염없이 되풀이했다. 뒤꿈치에 난 아주 작은 상처라도 걸을 때마다 아리고 거슬리는 법인데, 방치하면 점점 더 크게 벗겨져 상처 날뿐인데, 나는 내 발에 꼭 맞는 운동화로 갈아 신을 생각은 않고 '그까짓' 뒤꿈치 상처를 무시하지 못하는 나를 무시했다. 나만 이렇게 '작은 것'에 예민한가 싶었다. 남이 별생각 없이 한 말을 나 혼자 붙들고 몇 날 며칠 아파했고, 만났을 때 불편한 느낌의 사람이어도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하고 화살을 내게 돌렸다. 상대의 무례한 언행 앞에서 '트러블을 만들기 싫다'는 이유로 억지로 웃으며 사람 좋은 척했고, 펑펑 울고 싶은 마음 따윈 내게 없는 듯 행동했다.



벗으면 됩니다

"왜 저는 남들 말을 흘리지 못할까요? 늘 걸려 넘어져요. 바보같이."

발화자의 의도야 충고 건 뭐건, 부정의 기운을 가득 담은 건네는 이가 꼭 있다. 하던 놈이 늘 그런다. 양 백 마리가 있는 사람이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맨다는 성경의 구절처럼 내가 꼭 그랬다. 아흔아홉 마디의 다른 좋은 말은 저 멀리 두고 한마디 나쁜 말만 붙들고 아파했다. 아파하면서도 나는 참 바보 같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나는 대체 왜 이럴까. 힘들어하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거냐고 어느 분께 고민을 얘기했더니, 명쾌한 루션이 있었다.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걸요? 그런 사람은 안 만나면 돼요."

"... 아!"


왜 나는 안 맞는 운동화를 억지로 질질 끌면서 갈아 신을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어떻게 하면 뒤꿈치가 안 까질까요? 밴드를 몇 겹이나 붙였는데도 내 뒤꿈치는 왜 이렇게 약할까요?"라는 고민만 하고 있었을까. 첫눈에 나를 유혹했던 인어공주 그림이나 보라색 깔창은 이제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뒤꿈치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자꾸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힘을 뺄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고, 아무렇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괜찮은 척하는 것보다 진짜 괜찮아지는 데는 더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인어공주 그림도, 보라색 깔창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한다. 더 큰 용기와 힘을 통틀어 세상은 지혜라고 부르는데, 내가 정말로 괜찮아지려면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다. 애당초 운동화를 왜 신어. 맨발보다 더 편안하게, 신나게 걷고 뛰려고 신는 거잖아. 아무렇지 않은 내가 있으면 '그깟 일'이라며 무시하는 대신, 그 원인부터 들여다보기로 했다. 꿈이라고 해서 무시할 건 아니었다. 모두 나를 남겨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눈물이 그렇게나 났으면서, 깨어나서는 "뭘 그까짓 거..."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쿨한 척해봤자, 마음속의 두려움은 여전할 테니까. 해가 되는 건 피하고, 상처는 보듬는 게 지혜가 할 일.


꼭 맞는 운동화 한 켤레로 산책하는 순간이 좋다. 인어공주 그림이 없어도, 보라색 밑창이 아니어도, 발에 꼭 맞는 운동화가 비로소 내게 편안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천천히 걷고, 하늘을 보고, 가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을 만끽하면서 살고 싶다. 혹시 당신이 지금 아무렇지 않지 않다면, 신고 있는 운동화를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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