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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Dec 20. 2019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해도

견고한 현실


나는 웹툰 덕후(였)다. 몇 년 동안은 자기 전 세 시간 정도를 웹툰에 할애했다(물론 그러다 졸아서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리는 참사도 종종 있었다). 침대에 누워 가장 완벽한 각도를 찾아내고 나면 네이버, 다음, 레진, 네이트 등의 사이트를 순서대로 돌았다. 날마다 거의 모든 웹툰을 다 봤기 때문에 새벽 두 세시가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잠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뭘 하나 싶으면서도 곧 스토리에 감동받아 하품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인간의 상상력을 부지런히 자극해온 만화라는 매체 특성과 작가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는 점 때문에, 웹툰엔 정말 웃기고 신선한 소재들이 많다(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니...).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웹툰에도 유행이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흰쌀밥과도 같은 연애물은 열외로 치고, 요즘 유행하는 건 아무래도 '바꾸기'다. 물론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요즘은 바꾸기에 대한 열망이 더욱 드글거리는 것 같다.



나를 바꾸다

한 번쯤은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꿔본 적 있을 거다. 얼굴이 더 잘생기고 예뻤으면, 키가 더 컸으면, 돈이 많았으면, 능력이 있었으면... 웹툰에서 보여주는 바꾸기의 주요 타깃은 '얼굴'이다. 얼굴이 달라지면 그간 열망했던 모든 것이 따라오는 전개가 펼쳐진다. <여신강림>에서는 기겁할 메이크업 실력으로 본판을 감춰버린 여고생이 아이돌 급 뺨치는 외모의 남자 친구들을 사귄다. <얼굴 천재>에선 찐따였던 주인공이 완벽한 게임 캐릭터와 몸이 바뀌고 난 후 인기가 폭발하고, <라일락 200%>에서는 주인공이 여자 아이돌과 몸이 뒤바뀌어, 그동안 흠모했던 남자 아이돌과 친해진다. <당신도 보정해드릴까요>에서 주인공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건, 뚱뚱한 외모를 날씬하게 바꾼 것이다. <껍데기>에서는 못생겼다고 괄시받던 주인공이 성형을 해서 예뻐지고 연예인이 된다. <5kg을 위하여>의 주인공은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다이어트에 목숨을 건다. 완결된 웹툰이지만 <마스크 걸>의 평범한 회사원인 모미가 연쇄살인범이 된 이유도 결국은 외모 때문이었다.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주인공도 토끼탈을 쓰고 자기 존재를 감춘다.


얼굴을 바꾼 웹툰의 갈등도 당연히 얼굴이다. 여고생은 메이크업을 지우면 남자 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늘 걱정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게임 캐릭터 혹은 선망하던 아이돌과 몸이 바뀐 주인공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진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성형을 해서 갑작스레 예뻐진 주인공은, 그 후에 따라오는 다른 각도의 멸시에 깜짝 놀라 힘들어한다.



현실을 바꾸다

나를 바꾸는 게 안된다면, 두 번째는 나를 둘러싼 현실을 바꾸는(부수는) 방법이다. 일진물이 무척 많아졌다. 때려부수는 주 고객층(?)은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인데, 웹툰에 등장하는 웬만한 고등학생들은 격투기 선수다. 때려 패기가 수준급이다. <복학생>에서는 시골에서 장작 패던 점순이가-물론 주변에서 먼저 시비를 걸긴 한다- 장작 패던 손아귀 힘으로 사람을 패고, <10>은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서로 죽도록 때리고 맞으면서 끝난다(이 계보는 <ONE>으로 이어진다). 유명 일진이 주인공인 <프리드로우>를 비롯해 <갓 오브 하이스쿨><스터디그룹> <여고 전설><싸움 독학>... 게임 캐릭터의 외모뿐 아니라 능력치까지 얻은 <얼굴 천재>의 주인공도 싸우기 시작한다. 다들 교복을 입고 열심히 주먹을 휘두른다. 일진물은 아니지만 핑크맨의 신체를 이식해 초능력을 얻게 된 <핑크맨>의 주인공도 실은 허약하고 작은 고등학생이며, 복수용 인간병기로 길러진 도생원의 신분도 고등학생이다(그 능력으로 학교 일진들을 다 패고 다닌다). 일진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정도로 나열했지만, 훨씬 더 많은 작품이 있는 걸로 안다.



가정과 부정, 그 이후

바꾸기 열풍을 등에 업은 웹툰의 주인공들은 너도 나도 얼굴과 몸을 다른 존재와 바꾸고, 서로 몰려다니며 패고 맞는다. 이게 줄기차게 반복됐다. 가정한다는 건 곧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부정 콘텐츠의 인기는, 현실이 그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실에선 아무리 TV를 들여다보며 아이돌의 외모를 흠모한들 자고 일어나니 TV 속 그 얼굴이 내 얼굴이 될 리가 없으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주먹부터 휘둘렀다가는 그대로 두 주먹이 묶여 경찰서로 갈 테니까.


현실을 긍정할 이유도 없는 만큼, 현실 부정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부정 그다음이다. 단물 빠진 껍씹듯 줄곧 부정에 머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부정 다음엔 아무것도 없는 삶. 인생은 웹툰이 아니라서 나든, 현실이든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라는 어느 정도의 고정값을 데리고 싫든 좋든 앞으로 걸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걸어 나가다 보면 아주 조금씩 변한다. 그게 나 자신일 수도 있고, 현실의 풍경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한다. 그게 인생의 설정값이다.


위에 언급한 여러 웹툰 중, 그다음을 이야기하는 웹툰이 있다. 못생겨서 사회로부터 괄시받던 <껍데기>와 <마스크 걸> 두 주인공은 마침내 성형을 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껍데기>의 주인공은 성형 이후의 삶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마스크 걸>의 주인공은 더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결국 연쇄살인범이 된다. 늘 얻어맞는 게 일상이라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던 <10>의 주인공은 결국 학교의 일진까지 힘으로 제압한다. 그 계보를 잇는 <ONE>에서 역시 힘의 근원을 힘으로 누르려는 주인공의 시도가 있지만, 작가는 고요히 묻는다. "그런 방식이면 결국 너도 똑같은 놈이지 않을까?"하고.


아주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주인공과 함께 걸어가는 웹툰도 있다.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새벽날개>, 최근 영화화되기도 한 <시동>-웹툰을 꼭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각 장애인과의 사랑을 담담히 그린 <HO!>, 영화와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치즈 인 더 트랩>... 주인공들이 저마다 처한 현실 속에서 나라는 고정값을 끌고 한발 한발 걸어 나간다. 만나는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오해와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낙담하고 절망하면서도 다시 걸어 나가는 모습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


배우 마동석이 맡은 <시동>의 거석이 형은 조폭계의 알아주는 거물이었다가 중국집 주방장이 된 캐릭터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찾아와서 다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영화에서는 많이 덜어냈지만, 나는 이 작품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장면 중 하나다).


거석이 형이 직접 만든 짜장면을 밀어주며, 아마도 조직의 이인자일 맞은편에게 묻는다.

"넌 이 일이 재밌니?"

"재미? 형님이나 나나 이 짓 말고 어울리는 일이 있습니까?"

"난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

그리고 다시 말한다.

"찾았다. 나는."


어쩌면 모든 일진물의 주인공이자 장래일 거석이 형은, 둘러싼 현실을 끊임없이 부수다가(부정하다가) 결국은 그게 아님을 깨닫는다. 현실은 결코 부서지지 않고, 부술 수도 없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거석이 형은 '나'로써 행복을 찾는 데 성공했다(주방장인 '나'는 조폭이었던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폭이었던 나의 연장선이다). 어쨌거나 우리 모두,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든 현실이든 바꾸고 싶었던 이유도 현실이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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