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반지 Dec 26. 2019

가수 양준일과 우리들의 '얼굴'

무슨 50대 아저씨가 이렇게 예쁠 일인가(이미지 출처 : JTBC)


2019년 하반기로 접어들며 거의 매일 밤 자기 전 유튜브 <워크맨>과 <자이언트 펭 TV>를 챙겨봤다. 올해의 라이징 스타는 확실히 장성규와 펭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두어 달 전, 유튜브 알고리즘의 안내로 가수 양준일을 소개받고는 그대로 입덕했다. 똑같은 영상을 하루에 수십 번씩 돌려봤고, 심지어는 친구 집들이에 가서도 "아니, 어떻게 양준일을 몰라?" 하고는 머무는 시간 내내 양준일 영상을 틀어두었다(친구도 순식간에 입덕했다).



양준일의 얼굴 

올해 50인 2019년의 양준일이 "나의 경쟁상대는 20대의 양준일이다"라고 얘기했을 만큼, 유튜브에서 20대 양준일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영상 속 20대 청년 양준일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위화감 없는 멋진 패션감각과 세련된 음악, 무대매너, 아름다운 춤선을 선보인다. 매 영상마다 '시간여행자'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등의 댓글이 가득 달려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무엇보다 열광한 것은 양준일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맑음이라고 생각한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환영받는 양준일은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하는 '모난 돌'이었다. 시대가 그를 배척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상한 옷을 입는다, 이상한 음악을 한다, 영어를 쓴다... 영상 속의 사람들을 보면 양준일 빼고는 모두 <응답하라 1994> 출연진처럼 입고 있으니, 군중 속에서 그가 얼마나 홀로 튀었을까. '다름'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대략 '동경'과 '혐오' 이 두 가지 양상을 보이는데, 그때의 한국 사회는 양준일을 혐오하기로 뜻을 모았다. 무대에 돌을 던지고, 한국말이 서툴러 영어를 섞어 쓴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정지를 시키고, 미국 교포 출신인 그가 한국에 머무를 수 없도록 아예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그 어떤 음악가 곡을 주지 않아 혼자 더듬더듬 곡을 써야 했고, 잘못된 소속사를 만나 가수를 하는 한편 영어 강사를 하며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공론화될 수 없었던 당시의 이 모든 상황은 50의 양준일이 얼마 전 방송 출연을 통해 담담하게 밝히면서 드러났는데, 패널 중 한 사람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너무 고생하셨어요..."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양준일은, 그러니까 그 모든 상황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었을 스물세 살 청년은, 너무 밝고 맑다. 무대가 너무 재밌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춤추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몸짓으로 무대 구석구석을 누빈다. 인터뷰 영상에서는 한마디 한마디에 이 사람의 바르고 고움이 뚝뚝 묻어났다. 써본지도, 들어본지도 참 오래되었지만 '순수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영상 콘텐츠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내가 하루에 수십 번 양준일 영상을 돌려보고, 또 다른 영상을 발굴하러 돌아다닌 이유는 아무래도 이 맑은 눈빛과 선한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싶어서였으니.



우리들의 얼굴

20대 양준일을 향한 뜨거운 유튜브 조회수는 마침내 50대 양준일을 한국으로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30년이 지난 그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멸시와 온갖 조롱을 감내했지만 결국 추방까지 된, 모든 꿈이 거세된 예술가의 그 뒤를 상상하긴 참 쉽다. 과거를 증오하며 도박, 약물중독에 빠지거나 아니면 "음악 얘긴 꺼내지도 말라"며 과거를 부정하거나... 내 주변만 봐도 그런 인물은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양준일은 여전히 맑게 빛났다. 미국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다는 그의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줄곧 환하게 웃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왜 맑음은 저 사람을 떠나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이 일어났는데, 현실의 그가 약물이든 도박이든 그 어떤 것에 빠져있다고 해도 다들 그럴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텐데 그는 아니었다. 양준일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 의문을 마침내 풀었다.


JTBC 문화초대석의 마지막 주인공인 양준일에게 손석희 앵커가 묻는다.

"30년 전의 얼굴, 그리고 지금 이제 중년의 얼굴. 그 사이의 얼굴들은 어땠을까... 그 사이의 양준일 씨의 삶은 어땠습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버려야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지 않도록, 행복하기 전에는 불행함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노력을 생활처럼 했습니다."
"다 버렸더니 남는 건 무엇이었나요?"

"남는 건... 공간이었어요. 그 공간을 나의 과거로 채우지 않는 것, 자꾸 되돌아오는 과거를 자꾸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 공간을 만드는 자체가 저에게는 목적이었습니다."


자꾸만 되돌아오는 과거를 자꾸만 버리려는 노력, 이게 바로 그의 얼굴에 깃든 독보적인 맑음의 비결이었다. 과거는 자꾸만 따라붙는다. 과거의 일 때문에, 과거에 만난 사람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거야...라고 얼마든지 현실의 나를 변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변명을 하는 거울 속 내 얼굴은 어떨까. 웹툰 <쌍갑포차>에서 얼굴은 '사람의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고 표현한다. 얼은 뭐냐. 사전을 찾아보면 '정신의 줏대'라고 풀이되어 있다. 비슷하게는 영혼이라고도 하고. 그렇다면 줏대는 뭐냐.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란다. 그러니까 얼굴은 '정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드나드는 통로'다.


얼굴에 대한 이 시대의 관심은 지대하다. 지하철 역 내 벽면부터 입구 이르기까지 온통 성형외과 광고가 빼곡하고, 거리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넘쳐난다. 광고판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예쁜 얼굴이라 이 얼굴 중에 하나를 골라 가지라 해도 선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얼굴 중에 '맑고 행복한' 얼굴은 하나도 없다. 표면적인 얼굴은 수술로 만들 수 있지만, 정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드는 거니까. 양준일이 밝힌 뷰티 시크릿처럼 내 안의 쓰레기를 자꾸 버리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요즘 행복한 얼굴을 본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반갑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양준일의 얼굴을 보고 한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내 얼굴도 자꾸 맑고 환해졌으면 좋겠다. 50대에는 저런 미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준일의 얼굴이 참 고맙고 부러운 연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