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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15. 2020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건 언제나 당신


집을 나서서 1분만 걸으면 마치 1인분 같은 2인분처럼, 1차선 폭의 아슬아슬한 2차선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빵집 두 개가 마주하고 있는데- 몇 달 전, 한 곳은 다른 동네로 확장 이전을 했으니 '있었는데'라고 쓰는 게 맞다- 한 곳은 없어서 못 팔고, 다른 한 곳 역시 없어서 못 팔았다. 그러니까 한 곳은 빵이 없어서 못 팔고, 다른 한 곳은 손님이 없어서 못 팔았다. 마치 일등과 꼴찌를 짝꿍으로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 두 곳을 번갈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중간은 없었다. 다 팔거나 하나도 못 팔거나.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저녁이면 한 곳은 이미 불이 꺼진 지 오래고, 또 다른 한 곳은 한 번도 불 꺼진 적이 없는 듯 언제나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가는 빵집을 A, 그 맞은편 빵집을 B라고 하자.



B빵집 아저씨 

이 동네에 이사온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지만, B빵집은 2년 동안 딱 한 번 갔다. 이사 온 첫날, 대충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둑한 저녁이었고 이 동네가 어떻게 생겼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늦은 밤까지 불을 켠 빵집을 발견하곤 냉큼 들어갔다. 그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사 후 처음 맞은 주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식빵을 사러 나갔다가 A빵집에만 바글거리는 인파를 발견하고는 곧 사태 파악을 했다. 이사 첫날 A빵집을 발견하지 못한 건 일찌감치 완판하고 불을 껐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나는 A빵집의 충성스러운 고객이 되었다. 인스타를 팔로우하며 실시간 나오는 빵을 체크하고, 몸과 마음의 고됨을 호소하는 사장님의 소식에 하트를 꾹 눌렀다. 여간해선 댓글을 달지 않지만 정성스러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가득 빵이 담긴 봉지를 손목에 걸고 덜렁덜렁 집으로 걸어가는 길엔, 어김없이 B빵집이 들여다보였다. 매일 새로 굽는 건지, 이미 며칠이 지난 건지 알 수 없는 시무룩한 빵들이 쇼윈도 가득 쌓여있었고, 그 뒤에는 항상 도로 쪽을 내다보고 앉아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A빵집의 전면은 통유리라, 그 안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참 잘 보일 위치에 아저씨는 앉아있었다.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뜨끈한 빵 냄새가 훅 끼쳤다. 일찌감치 문을 연 B빵집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가게 안엔 팔리지 않은 빵이 그대로 탑을 쌓을 지경이었는데, 저 빵들은 어쩌고 다시 굽는단 말인가(그렇다고 안 굽기도 애매하다). 유리 너머로 들여다볼 때마다 빵들은 세상 귀찮다는 듯 시무룩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때론 빵 냄새의 진위여부를 의심하기도 했다. 빵 굽는 냄새 비슷한 방향제를 뿌리는 건 아닌가 하고. 어느 날엔 가게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를 마주친 적도 있다.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 피우는 손으로 만든 빵 같은 건 싫으니까. 볕 좋은 주말 한낮이면 부러 A빵집을 찾는 다른 동네 사람들도 종종 보이곤 했는데, 빵이 가득 담긴 봉지를 양손 가득 들고 B빵집 앞을 지나는 이들의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여기도 빵집이 있네?"
"여기 맛없대."


아침이건 밤이건 늘 문이 열려있는 건 B빵집이고, 그 앞을 지나며 괜히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는 나는, 그때마다 그 안에 앉아있는 아저씨와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 사실은 자주 B빵집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빵은 늘 그대로인(것 같은)데, 어쩌자고 저렇게 성실한가(성실하지 않으면 또 어떡하나). 왜 이 가게 앞에는 하필 인스타 팔로워만 5천에 달하는 인기 빵집이 있는가. A빵집이 없으면 장사가 좀 잘될까. 저 많은 빵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백종원의 처방이라도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큐원 제빵용 밀가루를 쓰던데-가게 문 옆에 빈 포대가 쌓여있는걸 몇 번 봤다-, 요즘 인기 빵집들은 프랑스산 유기농 밀가루를 쓴다는 걸 아저씨는 알까 모를까. 아저씨는 빵 만드는 게 재밌을까. 업종을 전환할 생각은 없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친구의 어제자 인스타그램


어제 광화문 사거리 한 귀퉁이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카페 휴지로 찍어내면서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새해가 되었고 한 살 더 먹었고 그러면 1년 치 정도는 어른이 더 되어줘야 하는 건데, 어쩌자고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인가 싶어 슬펐다. 사람들이랑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차 마시고 뜨끈한 밥 먹을 땐 내내 밀어놓고 모른 척하던 감정이, 비로소 혼자가 되니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을 타고 터져 나왔다. 회사에서 가장 최악의 사원은 '머리 나쁜데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인생이란 그림을 놓고 봤을 때 내가 딱 그 짝이다 싶었다. 삶에 대해 방만하거나 차라리 삐뚤어지거나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여태 살면서 술 먹고 필름 한번 끊긴 적이 없을 정도로 착실했다. 방향을 모르는 성실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줄곧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그 뭔가가 뭔지도 모르는 거다. 전철 안에서 휴지로 눈가를 꾹꾹 찍어내는데, 왜 문득 B빵집 벽에 수북이 쌓인 빵 무더기가 떠올랐을까. 팔리지도 않을 빵 위에 어김없이 또 새로운 빵을 구워 올리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불 꺼질 줄 모르는, 아무도 사지 않는, 그래서 항상 가게 안엔 축 젖은 빵들이 가득한, 그래서 담배를 가끔 태우는, 하염없이 성실할 줄 밖에 모르는 아저씨의 얼굴.


새해가 되고 '하루에 한편씩 글을 써야지'하고 참 야무진 결심을 했는데, 2주가 지나도록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이것도 조금 쓰고, 저것도 조금 써봤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지 않았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하다가 훌쩍 2주가 지났고, 이러다가 2주가 두 달이 될까 싶어서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B빵집 이야기를 꺼냈다. 꺼낼 수밖에 없었다(새해부터 못난 얘기 하기 싫어서, 다른 글로 열심히 돌려막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을 본 거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그때의 나에게 잠깐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너 십 년 지나도 똑같은 고민 하니까, 너무 심각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하고 말하고 싶단 생각을 가끔 한다. 뭐든지 질려서 신물이 올라올 때까지, 바닥 끝까지 실컷 해보라고. 십 년 뒤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며, 전철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2020년의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할까.


오늘 아침, 우연히 친구의 인스타를 보는데 '이제는 그 무엇이든 그만 되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몰라서 고민하던 스무 살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눈물바람으로 집에 가는 나도 잘 살고 싶으니까 그런 거지. 잘하고 싶으니까, 나는 이미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쓴 것 같은데 그런데도 여전히 형편없으니까, 이젠 어떻게 해야 될지 정말로 잘 모르겠으니까. 친구 말대로,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나 바람은 이제 신물 나게 지겹고 그 지겨움이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한다. B빵집 아저씨의 무뚝뚝한 얼굴은 어쩌면 친구의 문장을 체득한 표정 인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무엇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이젠 그 모든 것도 없이 팔리지 않은 빵 위에 팔리지 않을 빵을 날마다 굽는 그 얼굴.


그래서,

그래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건 언제나 당신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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