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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25. 2020

나는 한라봉이 되고 싶어  


한라봉

해마다 겨울이면 제주에 계신 엄마 친구분이 귤을 꼭 챙겨주시는데, 잎사귀가 달린 두어 개-왠지 좀 더 신선할 것 같아서-만 맛보고는 그대로 방치해뒀다 결국 썩어서 박스째로 버린다. 이걸 해마다 반복한다. 갖다 버린 박스만 몇 박스인지.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라봉은 그렇게 좋아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썩어가는 귤 박스와 내가 돈 주고 산 한라봉 박스가 나란히 놓여있는 풍경이 종종 연출된다. 가끔은 엄마 친구분께 "귤 말고 한라봉으로 부탁드려요."하고 말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기껏 생각해주는 분께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주변에 귤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나는 귤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한라봉도 실은 큰 귤일 뿐인데, 이건 왜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둑한 밤이면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한라봉을 꺼내 먹는 게 이 계절의 취미다.


취향이겠지만 한라봉은 일단 멋있다. 화를 못 이기고 마침내 터져 나온 것 같은 커다란 배꼽이 인상적이다. 야구공보다 살짝 큰 크기와 적당한 무게 덕분에 그립감이 좋고, 두툴두툴한 껍질의 감촉은 오래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이쯤 되면 한라봉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멋지고 감촉 좋은 껍질을 벗기고 만나는 과육도 물론 맛있다. 한 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한다면 성별 관계없이 아이 이름을 라봉으로 지어주고 싶을 정도로 이름도 맘에 든다(아이가 나를 이해해줄까). 어쨌거나 한라봉은 전적으로 내 취향이다.



지난여름, 푸른 나무들이 매미와 함께 울어대는 그 요란하고 울창하고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어두운 방에 처박혀서 아침부터 밤까지 글만 썼다. 그렇게 힘들게 쓸 필요는 없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어쨌든 나는 힘들게 썼다. 1월부터 3월까지 내내 처박혀서 한 권 분량의 소설을 쓰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회사가 급작스런 경영악화로 치닫는 바람에 여름부터 다시 처박혀 또 다른 글을 쓰게 된 케이스다. 사찰요리에 대한 글이라 요리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여름 내내 손엔 습진이 머물렀다. 기대를 안고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떨어졌고, 브런치에 앙심을 품고 경쟁사인 네이버로 이사... 는 안 했다(계정은 팠다).


브런치 수상작들이 물론 훌륭하고 잘 쓴 글이라는 건 아는데, 다들 예쁜 귤 같았다(이건 뽑히지 못한 자의 초라한 변명이니 넘기셔도 좋습니다. 전 못났으니까요). 브랜딩 안내서, 주택구입기, 재테크 안내서, 마케팅 실무, 직장생활 지침서, 퇴사 준비... 대상작들만 잘 읽어도 마케팅과 브랜딩 이론을 직장생활에 적용해 요렇게 조렇게 회사 생활을 잘하면서, 한편으로는 퇴사 준비를 알뜰하게 하는 동시에 재테크를 요렇게 조렇게 하고, 주택 한 채를 번듯하게 구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잘 팔릴만한, 시대가 선호하는 주제의 책들이었다. 내가 설 자리는 없구나 싶었다.



귤라봉

그렇지만 내가 잘 팔릴만한 책을 쓸 수는 없다. 안 쓴다는 게 아니라 못 쓴다. 어느 만화가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남들이 좋아하는 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거면 정말 좋겠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이 딱이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행복해서 할 뿐인데, 시대가 좋아해 주는 거면 완전 땡큐인 거지.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하는 분야는 주변의 또래들이 관심 없는 것들 뿐이다. 그렇지만 안 할 수는 없다. 나는 이걸 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니까. 내가 뭘 할 때 좋고 행복한지 분명하게 아는 편이니까. 긴 글을 쓰는 나를 두고 누군가들은 "요새 누가 글을 읽어. 유튜브나 해."하고 조언하는데, 나라는 사람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 문장으로 표현되었을 때 가장 적합하고 편안하다. 유튜브는 그다음의 일이다.


귤은 매끌매끌하고 반질반질하고 알맞게 예쁘다. 나는 한 상자 안에 가지런히 들어있는 귤을 내내 꿈꿔왔고, 어쩌면 지금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교해 특별히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하고, 입안에 넣으면 적당히 달고 새콤한. 잘 쓴 남의 수상작을 가지고 괜히 귤 같다고, 한라봉 껍처럼 투둘투둘한 마음으로 투덜거리는 나는 간절히 귤이 되고 싶은 한라봉 씨앗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한라봉이 좋다. 평정을 이기지 못하고 툭 튀어나온 성질머리 같은 한라봉 배꼽이 좋다. 귤은 안 먹어도 한라봉은 먹는 나처럼, 누군가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해 주겠지. 어차피 귤이 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왕이면 근사한 한라봉이 되고 싶다. 배꼽이 하늘까지 뻗쳐있고 껍질은 악어 등보다 거친. 그렇지만 내가 나를 제일 잘 알지. 배꼽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야트막하게 튀어나온 배꼽에, 귤인지 한라봉인지 헷갈릴 정도의 애매한 크기로 '이것은 귤인가 한라봉인가'를 인생의 카피로 삼고는 스스로를 '귤라봉'이라고 칭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꽤 많이.



(+) 다음 달에 첫 책을 계약합니다. 독자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소한 모임도 차근차근 계획해보려고요.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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