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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Feb 23. 2020

뭘 해도 안될 때

어느 날 어느 곳



미안해요 잘 안돼요

날짜도 좋다. 2월 22일. 오랫동안 기다렸던 공연, 그것도 맨 첫째줄.


공연 예매 때마다 모니터 구석에 네이버 초시계까지 띄워놓고 자세를 잡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너무 긴장해 손을 흠칫 떨어 버리는 약한 나의 성정 때문에 성공한 적이 없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손도 빠르고 침착한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마우스는 왜 놓치는 거냐'하고 애꿎은 마음으로 오른손을 탓하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좌석표를 들여다보면 몇 초 사이에 금세 매진이다. 아휴. 그런 내가 그래도 좋아하는 공연에 갈 때마다 대부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자리운이 좋기 때문이다. 얻어걸리는 운이라고 해야 하나. 문득 생각나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알이 빽빽하게 잘 박힌 옥수수에 뽕하고 알맹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썩 괜찮은 자리가 주인 없는 채로 비어있다. 역시 그때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손이 떨리는데, 경쟁자가 없는 시간대라 그런지 자리가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곤 한다(사실 인생 대부분을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어쨌거나 그토록 기다렸던 공연인 데다 맨 첫 줄의 영광까지. 조금만 더 보태면 겨울 코트 한 벌이 나올 티켓 값이지만, 몸의 온기보다는 마음의 온기를 택했다는 유치한 뿌듯함과 함께 막이 오르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상했다. 마이크에 문제가 있는지, 노랫소리가 매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악기로 숨소리 하나까지 다 잡히는 고요한 공간인데 그렇게 마이크가 버벅거리니 기대에 찬 내 마음도 버벅거렸다. 주위를 슬쩍 둘러봤지만 관객들은 그저 감격하는 분위기. 나만 몰입이 안 되는 거니, 나만 예민한 거니. 가수도 뭔가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노래를 하는 동시에 연신 음향조절장치를 매만지면서 인이어를 꼈다가 뺏다가 일어섰다 앉았다 했다. 그런 상태에서 두 번째 곡으로 바로 넘어갔고, 하필 두 번째 곡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에다 공연에서 꼭 듣고 싶었던 곡이라 아쉬움과 짜증이 배가 되었다. 겨울 코트가 무대 뒤편으로 훨훨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젠장.


몇 곡이 그렇게 끝나고, 가수가 "오늘 왜 이렇게 노래가 안되죠"하고 나지막이 하소연을 했다. 관객에게 발언권이 있다면 "그 마이크 좀 바꿔주세요."라고 손을 번쩍 들었을 텐데. 가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다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저는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뭐냐, 밑밥 까는 거냐 싶은데 "이런 말로 양해를 구하고 있어요"라며 이어지는 말. 공연 후기를 보니 다들 좋았다고 난리법석이던데 왜 하필 오늘 안된단 말이냐! 설렁탕을 사들고 집으로 간 김첨처럼 "어쩐지 앞자리가 비었더라니이이이!!!"하고 속으로 절규했다.


마이크 상태든 몸 상태든 뭐든, 노래가 잘 안 되는 날이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무대 위에 있고 관객 한 명 한 명의 사정은 모르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내 노래를 들으러 왔다. 그런 상태에서 노래가 안 될 때 나는 "오늘은 도저히 노래가 안되니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컨디션 좋을 때 다시 만나요"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다. 그간 합을 맞춰온 세션들은 내 등만 보고 있고, 나는 어쨌든 관객들과 약속한 두 시간을 내 노래로 채워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겠지. 관객에게 조금 마음을 기댄다면 "오늘 노래가 너무 안돼요. 미안해요.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요."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했다. 무대 맨 앞자리라 목에 핏줄서는 것까지 다 보일 정도로 열심히 불렀고, 썩 잘했고, 그간의 공연과는 달리 몰입은 잘 안됐지만-마이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앨범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노래를 재발견하는 순간도 있었다. 내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산란해서, 공연이 끝나고 흩어지는 사람들 중 하나를 붙들고 "오늘 마이크 이상하지 않았어요?"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도 솔직히 모르겠어

몇 년간 스산할 정도로 고요하다,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들려준 또 다른 가수의 말이 기억났다.

"음악을 다시 못 할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바라본 하늘에 전깃줄이 휙휙 지나가는데, 그게 오선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할 수 있게 됐어요."


매번 기가 막힌 표현으로 늘 나를 웃게 만드는 영국 유튜버 올리가, 치즈와 후추 조합의 크루아상을 먹으며 했던 비유가 떠올라 옮겨본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크루아상을 먹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치즈 퐁듀가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크루아상에게 바삭하게 안겨있는 느낌이야"라고. 유튜버계의 노벨 문학상!)

"영향력 있는 뮤지션들을 보면, 첫 앨범은 대중적이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이야. 플레인 크루아상처럼. 그리고 좀 더 어려운 두 번째 앨범이 나오지. 기존 음악에 뭔가 추가한 거야. 아몬드나 초콜릿처럼 뭔갈 더해주는 거지. 그 두 번째가 보통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거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 몇 년간 밥 딜런이 그런 것처럼, 여전히 예술적 가치는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적은 음악이 나와. 덜 대중적인 음악이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지? 똑같은 것만 계속 만들 순 없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 보면, 치즈&후추 맛이 나오는 거야. 정말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난 솔직히 모르겠어."


잘 안될 때를 생각한다. 그거밖에 없는데 그게 잘 안될 때를 생각한다. 하루짜리 일수도 있고 영원을 담보로 한 몇 년 일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열심히 해보려 애를 쓰겠지. 그것도 잘 안되면 그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전에 '음악을 다시 못할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아름다운 걸 턱턱 만들어내는 사람도 저런 슬럼프에 빠질 수 있구나'라는 백 퍼센트의 놀라움이었지만, 어제 공연에서 '노래가 너무 안돼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약간의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 십 년 동안 음악 만들고 노래한 사람도 저럴 때가 있는데, 나라고 저러지 말라는 법이 없겠나. 그럼 누구한테 빌어야 하나. 안되고 안되지만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그저 계속했더니 치즈&후추가 나왔을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두 손 놓고 하늘에 펼쳐진 전깃줄이 오선으로 보이는 행운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 뒤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고흐는 그래서 스스로에게 총을 쐈나.)



감사와 존경과 질투를 드려요

'노래가 잘 안돼요'하고 노래를 더 열심히 불러준 가수가 이런 말도 했다. '내게 음악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음악에 대한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라고. 그가 나중에 치즈&후추 같은걸 내놓으면 나는 팬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전 같지 않네'하고 등을 돌려버릴까. 내가 나중에 치즈&후추 같은 걸 턱 내놓으면 '다음엔 더 근사한 초코&아몬드를 내놓겠지'하고 나를 기다려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까.


작가 김훈이 '나는 겨우 쓴다'라고 고백했을 때, 웬 엄살 이세요 하고 가볍게 피했던 '겨우'의 무게를 이젠 귀퉁이나마 겨우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근처에도 못 간 걸 안다). 화가 김점선이 자기 전 캔버스에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똥색으로 칠을 해놓는 마음도 이해가 가려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똥색이 보기 싫어 일어나 작업을 한다고 했다. 화가 노석미는 <매우, 초록>이라는 자신의 산문집에서 '어느 화가는 아름다운 봄날엔 창에 암막커튼을 치고 작업한다'라는 말을 옮기며, 자신 역시 너무 신선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자신을 감싸지 않도록 늘 어느 수준으로 절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들 이렇게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열심히 노래하는 가수 어깨 뒤로 사라지는 코트를 하염없이 그려본 내 행동이 갑자기 미안하다). 훌륭한 예술가들이 차린 밥상을 다 물리고 밥상 있던 자리에 이쑤시개 하나 몰래 두자면, 나도 오늘은 글을 쓰기가 너무 싫었다.


뭐 결론만 얘기하자면, 나는 어제 보고 온 공연을 다시 예매했다. 겨울 코트 한 벌이 온전히 사라졌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의 현재는 초코&아몬드다. 온전한 하나를 다 먹어도 또 먹고 싶어서 머릿속에 줄곧 맴도는 크루아상이다. 그러니 나는 초코&아몬드를 최대한 누리고 싶다. 그가 나중에 음악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잘 안되니 노력하는 마음으로 계속하다가 마침내 치즈&후추가 돼버린다고 해도, 그때는 내 입맛도 좀 바뀌어서 치즈&후추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 세상의 모든 초코&아몬드에게 감사를, 그리고 치즈&후추에게는 존경을 바친다(변하지도 않고 줄곧 초코&아몬드인 이들에게는 무한한 질투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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