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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Feb 28. 2020

앞 좌석에 타고 있나요?

지난해의 오늘



집에서 직장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이 걸린다. 하루 중 나의 유일한 독서시간이기도 하다. 한 시간을 온전히 책에 할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좀처럼 책에 집중하지 못한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두 다리 사이에는 도시락 가방을 세우고, 나머지 한 손으로 책을 봐야 하다니!-. 다행히 자리가 나서 앉아 갈 때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오늘의 세일 품목을 살펴보기 바쁘기 때문에, 실은 한 시간 중 겨우 십분 정도를 책에 쓸까 말 까다. 그래도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오늘의 책 고르기는 포기하지 않는다. 늦을까 동동거리면서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꽂혀있거나 쌓여있는 책더미를 뒤적거린다.  



스누피가 있다면

이틀 전에 뽑아 든 책은 스누피를 그린 작가 찰스 슐츠가 쓴 <찰리 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이다(찰리 브라운은 스누피의 주인인 소년이다). 몇 년 전에 사놓고는 조금 읽다가 꽂아둔 모양인데, 이런 책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가 급하게 챙겼다. 출근길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몇 줄을 읽어내리다 콧잔등이 시큰해져서 괜히 콧잔등에 힘껏 주름을 만들어보았다(찰스 슐츠 씨의 영혼이 내 옆에 슬쩍 앉아 책장에 후추를 톡톡 뿌리기라도 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스누피를 아는 사람이 많을까, 모르는 사람이 많을까. 스누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을까. 스누피에 큰 애정이 없는 편인데도, 작년에 한 온라인 서점에서 만든 스누피 굿즈를 얻기 위해 책을 왕창 사들인 걸 보면 스누피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 아래에는 스누피가 그려진 데스크 매트가 깔려있고, 책상 한 구석에는 2019년 스누피 달력이 놓여있다. 그리고 조금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의 현재 카카오톡 프로필이 스누피다. 아마 잠들기 전에 프로필을 바꿔놓고는 잊어버린 모양이. 찰리 브라운이 스누피를 품에 꼭 껴안고 있는 장면이다.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있는 네가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제보다 더 많이 웃고, 더 기뻐하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어."


'지금 이대로 행복하면 안 될까?'라는 어느 날의 메모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에 깊게 빠져있었을 것이고, 괜히 심란해 잠 못 들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이 장면에 울컥해서는 프로필로 설정해놓고 그대로 잠에 빠졌겠지. 우연의 우연으로 책장에서 찰스 슐츠의 책을 발견해내곤, 지하철에서 괜히 또 울컥하는 거.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넌 지금 스누피를 봐야 할 때야! 스누피를 봐야 할 때라고! 스누피가 필요하다고!" 네, 인생님.


스누피는 참 편하게 생겼다. 척 보면 펜 가는 대로 슥슥, 막 그린 것도 같다. 스누피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 강아지와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기분 좋아지는 눈코입을 가졌다. 찰스 슐츠는 45년간 스누피를 그렸고, 만화는 그가 세상을 뜨기 하루 전까지 연재되었다. 그는 단 한 명의 어시스트도 없이 모든 작업을 혼자 해냈고, 그러길 원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 그리기 위해 노력했고, 슬럼프를 하루 이상 끌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자 했으며, 만화 속 대사와 관계없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그림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스누피와 그 친구들은, 찰스 슐츠의 오랜 시간에 걸친 치열한 노력을 태연하게 눙치면서 그저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뿐이다.



앞좌석이라도 괜찮아요

김정선 작가가 최근의 저서에서 "글쓰기는 번역입니다. 나만의 슬픔, 나만의 아픔, 나만의 기쁨, 나만의 분노, 나만의 생각, 나만의 의견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말을 좀 빌리자면 찰스는 훌륭한 번역가다. 실수, 슬픔, 아픔, 기쁨, 분노 따위를 찰스는 '안도감'이라고 번역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스누피와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찰스는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순한 영역이 있다고 믿었고, 독자들이 만화를 통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변기를 그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찰스 슐츠의 영혼이 내게 툭툭 뿌린 후춧가루를 들이마신 건, 바로 이 대목이다.

"... 안도감이라는 감정을 부모님의 차 뒷좌석에서 잠을 잘 때의 기분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중략) 사람은 훗날에야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고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른이란 영원히 앞 좌석에 앉아야 할 운명이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서 잠든 순간을 기억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언제 도착할지도 모른다.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묵묵한 어깨 한쪽이 보인다. 아버지나를 보며 말한다. "한숨 자."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을 다르게 말하자면 <찰리 브라운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한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운전 지침서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운전을 잘할 수 있는지, 운전을 하다가 지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운전대를 놓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자기 사고가 났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는 찰리 브라운을 태우고 어디론가 간다. 뒷좌석에 탄 찰리 브라운은 앞좌석의 어려움일랑 하나도 모른 채 그저 편안하다. 우리는 그의 만화 바깥에 사는 찰리 브라운이다.     


절망감에 시달리다가 스누피를 꼭 껴안은 찰리 브라운을 발견하고는, 문득 잠에 빠질 수 있었던 건 그 순간 비로소 안도했기 때문이겠지.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있는 너'라는 그 한마디에 위로받았기 때문이겠지. 뭐가 서러운 줄도 모르면서 모든 감정을 넓게 펼쳐놓고 엉엉거리는 내게, 누군가 콕 집어 말해주면 눈물이 뚝 그치는 것처럼 그날의 나는 '잘하고 있어'라는, 빤한 그 한마디 말이 필요했나 보다.


'빼도 박도 못하게 어른이 되었다'라는 어느 날의 메모처럼, 정신 차려보니 운전대를 꼭 쥐고는 앞좌석에 앉아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어른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를 끌어주는 견인차가 있다는 걸. 어른이 된 우리 모두를 태우고 가장 앞 좌석에 탄 찰스. 찰스 덕분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안도할 수 있다. 같은 책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안도감이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안도감을 그에게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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