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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Mar 30. 2020

봄이 주는 선물



2016년 3월, 그러니까 꼭 4년 전에 쓴 일기입니다. 마치 어제처럼, 입었던 옷도 다 기억날 정도로 선명했던 날이었어요.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날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서 전화받는 척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렇게 엉엉 울고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분명 얼굴이 말이 아닐 테니까, 회사 앞에 세워진 누군가의 차창에 내 얼굴을 좀 비춰보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등 뒤로 목련이 그렇게나 화사하게 피어날 모양이어서, 너무 놀라서 울음을 다 그치고는 울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었어요(물론 그 뒤로도 많이 울었지만요.)


그때 다니던 회사 입구 앞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안 볼래도 안 볼 수가 없었을 텐데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없고 바빴으면 목련 피어날 낌새를 눈치도 못 챘을까 싶기도 해요. 그렇게나 좋아하는 꽃이면서. 저때의 일기처럼 '꽃은 또 이렇게 피어나는데, 나는 도무지 뭘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던 시기였어요. 주차장 구석에서 쭈그리고 울던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말해줄 텐데. 너는 절대로 믿지 않겠지만, 너는 잘하고 있는 거라고. 몇 년이 걸리든 너의 꽃을 피워낼 시기가 올 거라고. 물론 그 애는 내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았을 테지만요.


어제랑 오늘, 집 가까운 공원으로 가서 목련을 실컷 봤어요. 공원의 구석구석을 다 찾아다니면서 목련을 보고 왔어요. 매년 꽃들이 피어날 때마다, 세상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려는 낌새를 보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늘 초조했던 사람이거든요. 또 시작이네! 어쩌지? 마치 온 세상이 나만 쏙 빼놓고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아서, 나도 좀 끼워줬으면 좋겠는데 차마 끼워달란 말도 못 하는 사람.


매일, 매달,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또 새해. 그렇게 늘 비슷한 하루를 비슷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나도 늘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어제랑 오늘을 돌아보니 이렇게 맘 편하게 꽃을 본 적이 참 오랜만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 덜 우는 것 같기도 하고요(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다행히 3월 내내 붙들고 있던 원고 작업을 잘 마무리했어요. 날씨 좋은 주말이면 괜히 집에서 창밖만 내다보며 어쩌지도 못하고는 노트북에 외장하드까지 챙겨가서 밖에서 낑낑거리다가 한 줄도 못 쓰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한 단계를 넘겼습니다. 주말 이틀 동안 꽃도 실컷 보고, (좀 쌀쌀한) 봄바람 맞으며 실컷 걷고, 이야기도 실컷 하고, 마음을 푹 쉬었으니 다시 건강하게 힘을 내볼게요.


2016년에 썼던 일기의 제목이 '봄이 주는 선물'인데요, 이 글에도 같은 제목을 붙여볼까 해요. 이제야 조금 봄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삼월이 딱 이틀밖에 안 남아서 아껴 쓰면서, 이 봄이 주는 선물을 많이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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