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옴니 버스

#05. 한 사람도 빼놓지 않기를

by 꽃반지


이야기가 사는 곳

버스의 어원은 '옴니버스'로, 라틴어 'Omnibus(모든 이를 위한)'에서 따온 말이다. 어느 날 버스의 어원이 문득 궁금해 찾아봤는데 이보다 딱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싶게 꼭 맞는 말이었다. 버스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태워주니까. 아이도 노인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훌쩍훌쩍 끅끅대는 아가씨도 말없이 태워준다. 몇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모인 연극, 영화 등을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하는데, 버스의 어원을 알게 되니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버스에 올라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인 셈이고, 정거장마다 타고 내리는 이야기들을 실은 버스는 말 그대로 '옴니버스'니까.


차체 흔들리는 소음이 가득한 전철 안의 공기와는 달리 버스 안의 공기는 대화의 지분이 좀 더 크다. 가장 빠른 길을 망설임 없이 전속력으로 가로지르는 전철은 쐑쐑, 철컹철컹하는 소리를 낸다. 어원답게 이곳저곳에 사는 모든 이를 일일이 태우러 둘러둘러 다니는 버스 안은 도란도란, 두런두런하다. 전철에서는 '저기요' '내릴게요' '지나가겠습니다'와 같이 전하고 싶은 말을 가장 짧게, 간결하게 전하게 되는 반면, 버스에서 왔다 갔다 하는 말들은 슬며시 에두른다. 나지막한 두 사람의 대화나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느 정도 맥락이 파악되기도 해서 애써 웃음을 꾹 참거나 속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할 때도 있다. 버스를 타면 꼭 맨 앞자리에 앉아서 기사 아저씨에게 기어코 말을 건네는 아저씨들이 있는데, 외롭고 심심해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는 모습이 사람 사는 풍경 같아 마음이 살갑다. 버스는 이야기가 사는 곳이다. 이야기들이 함께 모여 앉아 어디론가 향한다. 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버스 안을 맴도는 이야기들이 귓가를 간질인다.


이야기가 살아갈 곳

묵살된 이야기들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버스에 제대로 라타지 못했다. 모든 이를 위해 둘러둘러 가야 하는 버스가, 사람들을 골라 태웠다. 건 사람 사는 풍경이 아니다. 사람 타는 버스가 아니다. 아무리 애태워도 태워주지 않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 밖에 울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안다.


나가 있으니까 너도 있는 거야 샘내지 마.
네게도 나가 있으니까. 새에게도 나가 있고, 돌멩이에게도 나가 있고,
나무에게도 나가 있고, 물고기에게도 나가 있어.
새에게 나가 없으면 하늘도 없겠지. 그럼 구름도.
물고기에게 나가 없으면 물이 없고.

-김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중


우리 사회가 자꾸만 전철을 닮아가는 것 같다. 쐑쐑, 철컹철컹하는 소리를 내며 가장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다. 창밖의 풍경도, 이야기도 모두 생략된 채로. 그저 다다르기 위해 살아간다면, 다다르기 위해 무시해도 된다면, 다다르기 위해 묵살해야 한다면 대체 왜 다다라야 할까. 다다르기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다가가기 위해 살고 싶다. 나에게도 나가 있는 것처럼, 너에게도 나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철 밖 풍경처럼, 전철 안 이야기처럼 생략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새에게도, 돌멩이에게도, 나무에게도, 물고기에게도 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버스를 타고 싶다. 둘러둘러 가면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세상 속의 다정한 풍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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