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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08. 2020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야


이걸 왜 하는 거죠?

꼭 '맹모삼천지교'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주변의 힘은 무섭습니다. 거의 매일 달리기에 관한 글을 읽고 있는 데다, 최근에 알게 된 이웃이 엄청난 달리기광이라 밤마다 저를 불러냅니다.

"지현 씨, 달리기 같이 해요!"

아이고, 달리기는 무슨 달리깁니까. 퇴근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미 녹초가 다 되었기 때문에 땅 위에 두발 디디고 제대로 서있을 힘도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달리기를 같이 하자는 요청을 어렵사리 수락하고는 잠에 빠졌고요. 일어나니 새벽 두 시. 약간의 미안함과 민망함을 안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카톡을 했어요. 이웃의 답장이 왔습니다.

"달리기는 이제 저 혼자 할게요."


일요일 낮, 집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문득 '달리기를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거듭된 요청을 자꾸만 거절하는 것도 미안했던 데다 몇 가지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내 반에서 달리기가 제일 빠른 사람이 저였어요.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대부분 달리기 반대표로 뛴 데다 달리기를 할 때 온몸에 밀려오는 그 짜릿한 느낌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우 잘!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만 달리기를 피하고 싶은 걸까? 나는 정말 달리기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피곤해서 못 하는 걸까? 현재 내 체력은 어느 정도일까?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지만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두 시간 뒤에야 비가 쏟아질 예정이라,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얼른 트레이닝 복만 입고 모자를 덮어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서자마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서 다시 돌아갈까 잠깐 망설였지만, 많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그냥 비를 맞고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트랙에 도착하니 어떤 아저씨가 얼굴이 벌겋게 된 채로 헐떡 거리면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어요. 트랙 바깥쪽의 벤치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손주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고요. 하늘을 보니 구름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어서 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얼른 달려야겠다는 조바심이 났지만, 10분을 뛰더라도 달리기에 집중해보자는 마음으로 10분간 준비운동을 꼼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시작.


"달리기는 너무 재미없어요."

이웃의 요청을 거절할 때 가장 많이 했던 대답입니다. 요가나 발레처럼 어떤 동작을 연마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취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헬스나 필라테스처럼 기구를 이용하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 땅을 두발로 구르는 행위. 달리기를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그건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달리기를 잘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고, 반 대표로 트랙 위에 선 이상 다른 반 선수들을 이겨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목적이 없는 달리기라니, 무얼 위해 달린담... 한 손에 꼭 쥔 핸드폰에는 500미터를 뛸 때마다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두었습니다. 학교 구석에 있는 작은 트랙이라 별다른 뷰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뛰었습니다. 15분만 뛸까 하다가 3킬로를 뛰고 나니 5킬로도 뛰겠네 싶어 5킬로를 뛰고, 5킬로를 뛰어도 괜찮아서 그럼 40분만 뛸까 하고 40분을 뛰고 나니 6.7킬로가량을 뛰었습니다. 이왕 뛴 거 10킬로를 채울까 하다 다리도 슬슬 아프고 비도 점점 더 무겁게 쏟아질 것 같아 끝냈습니다. 뛰면서 잊었던 지난날의 기쁨을 다시금 맛봤다거나, 달려야 할 목적을 찾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오랜만의 달리기에 종아리만 얼얼할 뿐.


때로는 목적이 없어도 

요즘 제게는 이슈가 많아요. "무리를 해서라도 잘 놀고 잘 쉬라"는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컨디션을 잘 회복하는 문제가 가장 크고, 틈틈이 이삿집도 알아봐야 하고, 원고 수정 작업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회사 생활과 글쓰기의 병행을 전혀 못 할 것 같은데)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할까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첫 책 너무나 명확한 목표였다면, 그 뒤부터는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좋은 성적을 위해 달려야 할 필요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반의 1등을 위해 대표 자격으로 달려야 할 필요도 없어요. 이제는 달리기 앞에 홀가분한 사람이에요. 글쓰기도 마찬가지고요. 굳이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나는 왜 글쓰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을까. 글쓰기가 내게 즐거운가? 목적도 없는 달리기처럼 자꾸만 미루고 싶고 피하고 싶은 것 같은데 즐겁지 않다면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글을 쓰면 뭐가 나올까. 독자들은 문장에 등장하지 않은 마음의 배경까지 다 읽어버리는데.


저는 제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빛나고 너무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업물에는, 당연한 태도이지만 가장 좋은 걸 담으려고 하고요. 쿠키 50개를 구우면 그중에 가장 예쁜 것들만 골라 담아 선물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마음의 날씨를 항상 '맑음'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엄청나게 좌절을 하면서 맑은 날씨로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이에요. 요즘 글을 쓰다가 자주 멈춰버리는 것도, (아프다느니 힘들다느니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공개를 망설이는 것도, 아무래도 요즘 저의 날씨가 맑지는 않다는 생각에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자주 가는 미용실 원장님으로부터 작은 요가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런 문장이 있는 거예요. "살면서 몸과 마음이 안 아픈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라고. 사실 그게 맞잖아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건강하지 않을 때도 있는 거니까요. 옷은 입다 보면 더러워지는데, 왜 몸과 마음은 하루 종일 입고 다니면서도 더러워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탓할 필요는 없다고 요즘 자주 되뇝니다.


저는 이웃과 다시 약속을 했어요. 일주일에 세 번, 너무 추워지기 전인 11월까지 달리자고. 아무 목적도, 감흥도, 기쁨도 없는 달리기를 어디 한번 해보자고. 지난 주말에 제가 힘이 되는 말을 두 개나 얻었어요. 하나는 "(너무 힘들 땐)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라"는 것, 그리도 또 하나는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다"라는 것. 그러게요. 어디로도 향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그저 목적 없이 두 발을 굴러보는 것도 좋겠고요, 비 맞으면서 뛰었던 순간이 나쁘지 않았듯 맑은 날씨만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모든 게 메말라 사막이 되어버릴 거예요.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다시 해도 나고, 그런 와중에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두 발을 굴러보는 것도 지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의 SNS에 '화이팅은 언제나 두 번'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었어요. 그래요, 어쨌거나 화이팅은 언제나 두 번이고 달리기는 일주일에 세 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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