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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10. 2020

마음껏 다정할 수 있는 거리


매월 회사에서 만드는 잡지의 발행과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무려 '발행'과 '촬영'이라니, 나란히 놓고 보면 꽤나 묵직한 단어이지만  사람이 도맡다시피 하다 보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감당하고 있다. 매월 한번, 스튜디오로 가서 촬영을 하는데 오늘은 좀 문제가 있었다. 


몇 주전, 회사 측에서 스튜디오 변경을 고려하면서 기존에 촬영을 맡아온 스튜디오와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내가 담당자니까 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아휴!). 그간 회사와 손발을 맞춰온지 5년 가까이 되는 곳이었고 나는 이제야 겨우 입사 삼 개월 차라 실장님과 안면만 겨우 트고 점심이나 두어 번 같이 먹은 사이인데, 당장 그런 말을 하려니 목이 껄끄러웠다. 게다가 시국이 또 시국 아닌가. 실업자가 27만 명에 육박한다는 기사와 자영업자들이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파업한다는 기사가 연일 나온다. 촬영일정이나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할 때처럼 카톡으로 넌지시 건조하게 한 줄 남기는 게 좋을지, 그래도 미안하고 간곡한 어조를 담아 전화로 말하는 게 좋을지, 촬영장에서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 며칠간 말을 삼켰다. 촬영 2주 전에 겨우 전화로 이러저러해서 이달까지만 촬영하겠다는 말을 전한 뒤로 처음 뵙는 것이니 나도 조금 긴장했다. 구석구석 커다란 조명을 훤하게 켜 둔 공간이지만, 실장님의 얼굴빛은 꽤나 어두웠다.


"뭐.. 회사 측 결정이라면 따라야겠죠. 이 일 한지 15년인데 그래도 전 여전히 마음을 주네요."

쌀국수집에서 나는 괜히 젓가락으로 애먼 국물이나 휘젓고 있고, 실장님은 숟가락으로 노란색 밥알을 성급하게 떠 넣기를 반복했다. 간간이 이어지는 침묵. 사진이 너무 좋아서 전공을 뒤로하고 다시 전문대에 들어가 내 나이 무렵에 스튜디오를 차려서 이제 15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실장님은, 이 일하면서 마음을 많이 다쳤다는 얘기를 했다. 최근에도 아주 오래 일한 업체 담당자가 갑자기 가격을 후려치면서 말을 심하게 했는데, 그 일로 상처를 받아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다고 했다.

"100명이랑 같이 일하면 상처 나지 않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 두, 세명 밖에 없어요."

"두, 세명이요? 다들 너무 못됐네요."

젓가락으로 떠지지도 않을 쌀국수 국물을 휘저으며 '상처 나지 않게'라는 말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다들 '상처 받지 않는 법'에 대해서 떠들고, 상처 받은 사람을 나약하고 못났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상처 나지 않게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우선순위 아닐까.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상처 나지 않게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더 맞는 거 아닐까. 마음껏 함부로 대해도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논리 속에 살고 있다. 함부로 대해도 애써 괜찮은 척하면 그게 '쿨'한 거고, '대인배'인 건가. 실컷 상처 받고도 여전히 마음을 주고 못 거두는 사람들이 참 바보 같지만, 나도 그 바보 무리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일은 그냥 일로 대하세요"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일을 어떻게 일로 대하겠나. 일은 사람이 하는 건데, 그 속에 한 사람 분의 배려와 온기가 들어있는데. 그 속을 넉넉히 헤아리진 못해도 잊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아무 말도 못 했지.


서툰 점심을 먹고 촬영을 했다. 가을 컨셉이라 밤송이며 솔방울, 낙엽 따위를 놓고 촬영했는데 밤송이가 바싹 말라서 몇 번이나 찔렸다. 양 손가락에 피를 다 봤다. 좀 전에 실장님과 나눈 대화도 있고, 얼마 전에 누군가가"사람마다 어울리는 적정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한 게 생각났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서늘하고 냉정하게 느껴져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꼭 거리를 둬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미리 가늠하고 헤아릴까. 그리고 그 거리를 어떻게 유지할까. 사람 사이에 적정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 맞지만 누군가와는 이만큼 가까운 거리, 누군가와는 이 정도 먼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건 애당초 마음을 나눠 쓸 수 있다는 뜻이니까. 누군가에게는 내 마음을 한 컵만 주고, 누군가에게는 내 마음을 한 방울만 줄래, 하고. 사람이 좋아지면 온 마음을 왈칵 쏟아버리는 나 같은 사람은 결국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다가 밤송이에 찔려 피를 보고 마는 거다. 따끔!


찔리지 않으려면 한걸음 물러나는 게 맞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으면 좋겠다. 그 거리를 뭐라고 부를까 곰곰 고민하다 '마음껏 다정할 수 있는 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마음을 건네면 두 사람의 거리가 짧아서 건넨 마음을 바로 돌려받을 수 있는 거리. 안심하고 마음을 기댈 수 있고, 한없이 다정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일단은 '마음껏 다정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온 마음을 주고, 그 마음을 되돌려 받고 싶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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