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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11. 2020

너 나의 언덕이 돼라!


친구 1

어젯밤 퇴근길,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 달 만인가. 하품 섞인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던 친구는 요새 주말출근이 잦아 바빴다며, 너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 나... 는 뭐... 그냥... 그냥 지내지."

너는 사람이 어쩜 그렇게 무심하냐, 우리가 연락을 안 한 지 한 달도 넘었다, 연락 좀 먼저 하고 그래라...로 이어지던 친구의 귀여운 잔소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언덕.

"너도 비빌 언덕을 좀 만들어. 사람이 기댈 데가 있어야지 줄곧 그렇게 혼자 버티냐."

"내가 뭐 비빌 언덕이 있. 원래 어디에 비비고 그런 거 잘 못해."

"원래 그런 게 어딨냐, 원래 그런 게. 얼른 비빌 사람 좀 찾아보고 그래."

"아휴, 생존 확인 전화 고맙습니다."


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아마 '원래'일 테다. 내게 익숙지 않거나 쉽지 않은 부분을 친구가 자꾸 끄집어내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자주 성가시거나 불편하다는 감정이 올라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부탁을 하면 되잖아. 자, 부탁해봐. 도와주세요 하고."

"나 원래 도와달라는 말 잘 못해. 어릴 때도 부모님이 뭐 안 도와줬어. 나 혼자 알아서 하라고 했지. 학교 마치고 비 올 때도 안 데리러 왔다니까."
친구는 포기를 모르는 집요함으로 나를 공격하고, 나는 '원래'를 방패로 내세우니 사소한 대화가 결국엔 몇 번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친구는 특유의 무심함과 털털함 때문에 한 달 전의 대화를 다 잊어버린 모양인데-그러니 전화를 했겠지만-나는 특유의 꼼꼼함과 기억력으로 한 달 전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니 연락을 안 했고-. 한 달 전으로 돌아가면


(사방이 탁 트인 한옥카페, 마감 40분 전)

친구 : 너는 너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 :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갑자기 왜?

친구 : 내 생각에 넌 '내가 낸데'라는 사람이야.

나 : 뭔 소리야.  

친구 : 너는 바뀔 생각을 하나도 안 하고, 상대방한테 맞추라는 식이야.

나 : 내가 맞춰주고 싶은 사람이면 어련히 맞췄겠지. 너야말로 니 고집 나한테 강요하잖아.

친구 : 난 너한테 어떤 사람인데?

나 : 싸가지없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한 달도 지난 대화를 깨알 같은 기억력으로 복기하는 나도 웃기지만, 어쨌거나 나의 공격을 시간으로 뭉개버리고 다정하게 비빌 언덕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주다니. 말이 나와서 그런지 전화를 끊고 나니 '비빌 언덕'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작은 언덕의 이미지를 그려보기도 하고, 언덕 앞에 서서 양 손바닥을 비비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비빌 언덕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미더운 대상'이라는 뜻이었다. 네 글자 안에 좋은 뜻은 다 들어있었네. '보살피다'라는 말에 깃든 온기와 정성을 좋아하는데, 비빌 언덕은 보살펴 줄 뿐만 아니라 방향을 헤매지 않도록 옳은 방향으로 끌어주기까지 한다니! 이거 뭐 비빌 '언덕'이 아니라 비빌 '에베레스트' 아닌가? 고작 언덕으로 이렇게 좋은 의미를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건가? 내친김에 좀 더 찾아보니 '언덕'자체에 이미 그런 뜻이 담겨있었다.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대상'. 누군가를 보살피고 이끌어주는 건 엄청나게 대단하고 어렵고 힘이 많이 드는 일 같은데, 왜 야트막한 언덕에게 그런 일을 맡겼을까. 만약 눈앞에 작은 언덕이 있다고 해도, 그 언덕이 과연 '비빌 언덕'급일까? 등을 기대고 잠깐 기대 쉴 수 있다 해도 그 언덕이 미더운 대상인지 어떻게 알고 덥석 마음을 놓을까. 비빌 언덕을 어떻게 알아볼까. 겨우 언덕을 하나 발견했는데 비빌만한 언덕이 아니면 그땐 또 어떡하나. 잠깐 등을 기대 졸다가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제 난 비빌 언덕을 찾으러 떠나야겠어"하고 다른 언덕을 찾아 떠나야 하나 어쩌나.


친구 2

자기 전 또 다른 친구와 통화를 했다(이렇게 쓰고 보니까 친구들과 전화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걸려오는 전화만 겨우 받는 알량한 사람입니다). 내가 유독 기운이 없는 것 같다며 안부를 묻던 친구가 통화 끝에 "힘내! 내가 옆에 있잖아!"라는 말을 했다. 얘는 이렇게 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몰랐는데 언제부터 옆에 있었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래도 그 말이 고마워서 웃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는 건 고맙고 따뜻한 행동이니까.


이 글을 쓰며 어제 두 친구와의 통화를 곰곰 되새겨보니, 비빌 언덕이라는 건 애초에 어디 있는 게 아니고 아주 작은 언덕들, 가느다란 풀뿌리와 들꽃의 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빌 언덕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아서는 "비빌 언덕이 대체 어디 있나"하고 찾으려는 걸 수도 있겠다고. 파랑새를 찾아 바깥을 샅샅이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파랑새를 발견한 사람처럼, 보물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집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묻혀있는 보물을 꺼낸 이처럼, 나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이구나. 집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밤하늘이, 짙은 풀냄새가, 귓가의 바람이, 친구의 전화 한 통이 모두 내가 비빌 언덕일 수도 있는데. 아침에 마시는 꽃차 한잔이, 옆자리 과장님이 내 생각나서 사 왔다며 한쪽 나눠준 샌드위치가 모두 내가 비빌 언덕일지도 모르는데. 애당초 동그스름하고 야트막한 언덕에 '보살피고 이끌어주고 미더운'걸 덥석 안긴 이유도, 보살피고 이끌어주고 미더운 대상은 저 멀리 녹지 않는 만년설 같은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고 편히 안길 수 있는 대상이라는 뜻 아닐까. 언덕이라서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나의 비빌 언덕은 애당초 하나가 아니고, 사금파리처럼 세상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문득 마음이 든든해졌다. 내가 비빌 언덕은 작 작은 언덕이라는 걸 알았으니,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에 최선을 다해 기대야겠다. 마음속으로 몰래 주문을 외면서.

"너 나의 언덕이 돼라!"


*주의 :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이미 저의 비빌 언덕에 자동 가입되셨습니다. 탈(언)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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