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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23. 2020

강변룩 강남룩


너 이번에 내려요?

출근길 전철에 오르면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무려 열여섯 개의 정거장을 오롯이 서있지 않으려면-서있기만 하면 다행이겠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무리에 부대껴가며 자리를 간신히 지키느라 애써야 한다-일단 올라타자마자 빈자리를 재빨리 스캔해내는 능력이 요구되지만, 출근 시간대의 전철엔 대부분 자리가 없고 혹여나 운 좋게 자리를 찾아냈다 한들 어느 분야나 나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있기 마련이라, 내가 빈자리를 찾아낸 순간 그의 엉덩이는 이미 착석 중이다. 그러면 두 번째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미래를 점치는 기술이다. 누가 곧 내릴 것인가. 처음에 내가 초점을 맞춘 것은 행동이었다. 초조한 눈동자로 노선표를 자꾸 들여다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날 듯 엉덩이를 주춤거리는 사람이라면 곧 내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만 정말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곧 내릴 것 같은 초조한 눈동자로 매 정거장마다 노선표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내릴 때까지도 내리지 않고, 곧 일어날 듯 주춤거리는 엉덩이는 그저 주춤거리기 위해 태어난 마냥 좌석과 딱 붙어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흔들리는 눈빛 한 번에, 들썩거리는 엉덩이에 나는 얼마나 마음이 설렜나. 번번이 속수무책으로 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전략을 바꿨다. 전 직장 동료들의 대화에서 착안한 것으로, 특정지역마다 비슷한 느낌의 출근룩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침마다 올라타는 2호선은 강변역을 거쳐 강남으로 향하는데,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복장에 집중하기 시작하니 확실하게 차이가 보였다. 강변역은 고속터미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캐리어-이렇게 확실한 징표가 있으면 좋지만, 만원 전철에 캐리어까지 들고 타는 것만큼 곤욕도 없으므로 캐리어는 드물게 목격된다-를 들고 타거나 큰 백팩을 멘 사람이라면 강변역에 전철이 도착할 때쯤, 그 앞에 슬그머니 서봐도 좋다(물론 내 앞에 겹겹이 진을 치고 있는 인파를 뚫을 수 있다면). 깔끔한 정장이나 슈트 차림은 90퍼센트 이상이 강남 역삼 선릉 주변으로 내리기 때문에 피한다. 한동안 사람들의 복장만 스캔하며 미래를 점치던 나는 곧 인생의 단순하고 거대한 진리에 봉착했다. '사람은 외양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흡사 킹스맨을 연상케 하는 말끔한 슈트 차림의 남자가 우발적으로 출근을 포기하고 바다 보러 가기로 결심한 것처럼 강변역에서 내리는 경우도 있었으며(물론 강변역 근처의 회사에 다니고 있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경우만 따져봐도 주말 복장이 출근룩이고, 출근 복장이 동네 부랑자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옷 입은 채로 다림질을 했다는 어느 날의 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빈자리는, 남들의 작은 행동이나 복장만을 가지고 재빨리 내린 평가가 맞아떨어졌을 때야 얻을 수 있는 거였다. 한마디로 그냥 운이었다(물론 빈자리가 날 확률로 따졌을 때, 복장이나 행동으로 유추하는 것이 속절없는 기다림보다야 승산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직선이 아니니까

그런 경험이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내가 기대한 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주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당혹감, 때론 용량을 초과한 당혹감이 분노로 뒤바뀌는 경험. 내 뜻대로 안 되면 당황했고 때로는 화가 났다. 내가 사과를 했으면 너도 사과를 받아줘야 하잖아. 내가 이만큼이나 알아듣게 얘기했으면 너도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거잖아.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면 너도 나를 친절하게 대해줘야 하잖아. 이상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일정한 입력값을 넣으면 기대한 출력 값이 나와야 마땅하다는 공식을 사람에게 적용하고 번번이 당황한 내가 참 순진하고 바보 같지만, 한마디로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세상 사람들은 정말 피곤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더는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겨우겨우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설탕 발린 적당한 말로 관계를 유지할 것. 어머 머리가 너무 예뻐요. 살 빠지신 거 같아요. 옷이 잘 어울리네요. 이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의 오랜 장래희망을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의 장래희망은 일직선이었다. 어디를 향하든, 무엇이 되든 변곡점 없는 밋밋하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꿈꿨다. 설령 변곡점이 있더라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과속방지턱 정도의 잠깐 놀라는, 그렇지만 충분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정도를 기대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적당한 기업에 취직해서 가끔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을 기울이면서 회사일의 고단함과 인생의 지루함에 대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푸념을 늘어놓으며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안)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을 기대했다.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바왔다는 건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되었지만. 삶의 속성 자체가 변곡점이 무수히 많은 물결인데, 나는 일직선을 주장하면서 내 삶이 일직선이 아니라고 화를 내고 불행해하고 있었다. 바다 멀찍이 서 있는데도 밀려오는 파도 때문에 발이 자꾸 젖는다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눈물을 그치게 된 계기는 파도에 밀려온 이야기 때문이다. 시무룩한 얼굴로 쭈그리고 앉은 내게 파도가 자꾸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실어다 주었다. 이미 나를 앞서 바다를 맛본 많은 이들이 남긴 '바다 견문록'이었다. 사람은 피곤한 족속이니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발이 젖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고,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까지 물결이 차올라도 괜찮을 것 같고, 바다에 푹 잠겨 몸을 맡겨보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게 됐다. 편지를 자꾸 읽다 보니 바다를 향해 살금살금,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나아가게 됐다. 누가 등을 떠밀어서 마지못해 발을 떼는 것이 아니라, 이왕 발을 적신 김에 종아리까지 젖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다로 한발 한발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보였다. 나처럼 발을 막 담그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허벅지께까지 젖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밀려오는 파도를 날렵하게 타는 사람도 있고, 온몸을 버둥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 모두 물결 속에 있었다. 삶이라는 구불구불한 물결 속에서, 때로는 서로가 기대한 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부딪느라 번쩍번쩍 불꽃을 일으키면서 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윤슬처럼 반짝여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는.


매일 아침, 수많은 사람들과 지하철에서 부대낀다. 간신히 서있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잠깐이지만 앞 옆 뒤 사람을 모두 미워하고 큰 백팩을 멘 사람을 골라 그 앞에 선다. 여간해서 빈자리는 나지 않고  내릴 듯이  내릴 듯이 내리지 않는 그 사람이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기대한 대로의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전혀 내릴 기미가 없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리는 바람에 럭키를 외치며 앉게 되는 하루도 있는 것처럼. 기대하고 실망하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날들의 합이 인생이려니. 아, 오늘도 출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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